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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금강산 철도 복원해야 진짜 실익 있는 남북 화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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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29면

[오영환의 외교노트] 역사적으로 본 남북 철도 연결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낸 역사학자 정재정(67)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새 연구서 '철도와 근대 서울(국학자료원)'을 출간했다. 정재정 명예교수가 12일 중앙일보사 J빌딩 7층 회의실에서 책 출간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낸 역사학자 정재정(67)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새 연구서 '철도와 근대 서울(국학자료원)'을 출간했다. 정재정 명예교수가 12일 중앙일보사 J빌딩 7층 회의실에서 책 출간과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남북간 철도 연결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남북이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 진행하기로 한 데 대한 미국의 시선이 곱지 않다. 미국 조야에서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보다 남북 관계가 앞서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남북 철도 연결로 대북 제재의 숨통을 틔우려는 북한과 제재를 북한 비핵화의 마지막 카드로 보는 미국의 시각이 엿보인다. 결국 남북 철도 연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철도네트워크 연구를 집대성한 『철도와 근대 서울』을 최근 펴낸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를 만나 역사적 관점에서 남북 철도 연결 문제를 짚어보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낸 정 교수는 한국 근대사, 한일 관계사 전문가다. 한반도 철도 관련 저서는 1999년의 『일제 침략과 한국 철도, 1892~1945』에 이어 두번째다.

『철도와 근대 서울』 낸 정재정 교수 #철원-내금강 117㎞ 다시 이으면 #해금강까지 당일치기 여행 가능 #서울이 금강산 관광의 메카 될 것 #경의·동해선 연결은 상징적 의미 #정치적으로 시행하면 실효 없어 #미국 동의 없는 철도공동체 어려워

저서에서 ‘한국 철도는 침략과 저항, 지배와 동화, 개발과 수탈, 억압과 성장의 상극 관계를 갖는 민족 모순의 핵심’이라고 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철도가 갖는 의미부터 묻고 싶다.
“철도는 인류 문명의 총화다. 지적, 기술 능력을 집약해 만든 집합체로서 영국·독일·미국 등은 철도를 통해 국내 시장을 통합하고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철도에 의해 주권이 억압당하고 침략을 받았다. 선진국들이 보는 철도는 문명의 이기(利器)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선 침략과 착취의 흉기(凶器)다. 우리의 시각으로 철도를 다시 보는 게 중요하다. 철도는 침략의 도구지만 문명의 전령(傳令)이다. 근대를 학습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이런 것까지 넓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은 육로 교통 단절된 섬 아닌 섬

경성(서울)-도쿄간 왕복표. [사진 정재정 교수]

경성(서울)-도쿄간 왕복표. [사진 정재정 교수]

문 대통령의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을 어떻게 보나.
“남북은 육로 교통이 단절된 섬과 같다. 여기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은 남북 모두 갖고 있다고 본다. 남한은 휴전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섬이 됐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해 스스로 섬이 됐다. 이를 탈피하지 않으면 남북 관계, 한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본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철도공동체의 범위를 어떻게 보는가.
“문 대통령 언급 속에 남북, 중국·러시아·몽골·일본·미국이 들어 있다. 잘 짚었다고 생각한다. 철도로 인해 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역이 중국·몽골·시베리아다. 경제성을 갖기 위해선 일본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여기에 일본은 과거 이런 철도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이 구상은 세계 전략과 맞물려 있는 만큼 미국이 빠지면 수립될 수 없다.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아야 성립될 수 있다.”
미국의 이해관계를 부연한다면.
“철도는 정치적, 군사적 성격이 강하다. 비행기가 일상화되기 전 철도 자체가 무기였고 철도망을 지배하는 자가 그 일대를 지배했다. 지역의 세력 판도를 결정하는데 철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실현하려면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시모노세키-탈린(에스토니아)간 승차권. 시모노세키~부산은 관부연락선을 이용했다. [사진 정재정 교수]

시모노세키-탈린(에스토니아)간 승차권. 시모노세키~부산은 관부연락선을 이용했다. [사진 정재정 교수]

동아시아철도공동체에서 대두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는.
“우선 궤도 문제가 있다. 일제 강점기 동북아 철도는 남북, 만주, 화북에 이르는 지역이 표준궤로서 동일 궤간(1.435m)이었다. 시베리아철도는 소련의 세력권이어서 궤간을 달리했다. 1.520m 광궤를 채택했다. 동북아 철도를 러시아 철도와 연결할 때 열차가 직통으로 달릴 수 없는 근본적 문제가 생겨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동력 문제다. 고속전철로 하려면 전압을 통일해야 한다. 신호 체계도 맞춰야 한다. 기술적 문제가 많은 만큼 국가 간에 긴밀한 논의와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철도공동체 구상은 고속철이 전제인가.
“당연하다. 고속철이 아니면 경제성이 없어 의미가 없다. 북한의 간선철도가 시속 40㎞이다. 계속 사용하려면 철도망을 전부 현대화해 시속 250~300㎞로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이 현재 추진 중인 경의선, 동해선 연결을 어떻게 보나.
“철도 단절은 남북 분단의 상징이고, 이를 잇는 것은 분단을 극복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요체는 상징적인 행사가 끝난 후 어떻게 경제성을 담보하면서 현대화할 것인 지다.”
도쿄-베를린 승차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는 이 편을 이용했다. [사진 정재정 교수]

도쿄-베를린 승차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는 이 편을 이용했다. [사진 정재정 교수]

북한 철도의 과거와 현재 상황은.
“해방 당시는 북한 철도가 남한보다 우월했다. 북한은 자동차보다는 철도 위주로 갔고, 전기화했다. 그러나 점차 시설이 낙후한데다 정전 등으로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아직도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는 노선도 있다. 일제 말기에 경의선 등 간선 철도는 복선으로 깔았다. 하지만 북한은 다른 곳에 철도를 부설하려고 철로를 수거하는 바람에 경의선도 단선으로 바뀌었다.”
북한과 연결되는 국제철도 노선은.
“중국과는 세 개가 있다. 첫째는 신의주~단둥(丹東) 구간이다. 이를 통해 평양에서 베이징을 왕래하는 재래선이 운용되고 있다. 만포와 지안(集安) 사이의 압록강 국제철교를 넘나드는 국제열차도 있다. 요즘 지안에서 평양까지 관광 열차가 다닌다. 만포에서 평양까지 360㎞로 10시간 걸린다. 두만강 하류 남양과 투먼(圖們)을 연결하는 국제철도도 있다. 이곳은 주로 화물차만 다닌다. 러시아와는 나진~하산 간 철도로 연결돼 있다.”
동아시아철도공동체가 구축된다고 하면 서울이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텐데.
“서울은 한반도 한가운데에 있어 어디로 가든 거치게 된다. 간선 철도는 서울 경(京)자가 쓰인 철도가 대부분이다. 경의선, 경부선(서울~부산), 경원선(서울~원산), 경춘선(서울~춘천), 경경선(서울~경주·중앙선)이 그것이다. 이것이 대륙과 연결됐을 때 경의선은 베이징까지 직통이다. 뤼순(旅順)~다이렌(大連)~하얼빈(哈爾濱)~모스크바로도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경원선, 함경선(원산~상삼봉), 북선선(상삼봉~웅기)을 통해 만주 중앙까지 이어졌다. 과거 서울은 사방으로 분기해가는 철도의 결절(結節)로서 동북아 허브 역할을 수행했다.”

일제 때 서울은 동북아 철도 허브 역할

허브 역은 어떤 경제 효과를 보게 되나.
“일본 강점기 서울은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었다. 관광은 철도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서울은 중국과 시베리아를 가려는 사람들 모두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또한 2000년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만약 철도가 연결된다면 서울이 각광받을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남북은 원산, 금강산 중심의 동해관광특구를 협의키로 했는데 서울의 이점을 살리는 방안은.
“경의선, 동해선은 상징적 의미가 강하고 실익은 없다. 진짜 실익은 경원선에 있다. 경원선의 철원역에서 지선으로 내금강역까지 휴전선 위를 따라 들어가는 약 117㎞의 금강산철도(전기관광철도)가 있었다. 금강산철도만 살리면 서울은 금강산 관광의 메카가 될 수 있다. 이 노선은 조금만 보수하면 금세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금강은 동해안과도 멀지 않다. 철도를 놓아 동해선과 만나게 하면 해금강까지 당일치기 관광권으로 개발할 수 있다.”
과거는 어떠했나.
“일본 강점기 서울에서 오후 10시에 열차를 타면 오전 6시에 금강산 바로 밑 내금강에 도착한다. 온종일 구경한 후 오후 10시에 내금강역에서 열차를 타면 그다음 날 오전 6시 서울에 도착한다. 상당수의 사람이 이를 이용해 관광했다. 서울에 근무했던 서양 외교관은 가장 큰 추억 중 하나로 금강산 열차를 꼽기도 했다. 진짜 남북 철도 연결 의지가 있다면 경원선과 금강산철도를 살려야 한다.”
현재 남북 간에 이 노선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군사적 대립이 가장 첨예한 지역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6·25 전쟁 때 백마고지 전투 등이 있었던 지역으로 지금도 병력이 가장 밀집된 곳이다. 금강산철도는 휴전선과 나란히 있기 때문에 이를 잇는 것은 실질적인 화해의 방증일 수 있다. 국제정치적 문제인 만큼 미국의 도움과 지지도 필요하다.”
과거 동북아 철도 네트워크는 어떻게 운용됐나.
“일본 열도, 한반도, 만주, 화북, 화남, 동남아 일대까지 일본이 철도망을 지배했다. 이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었다. 당시 도쿄가 기준이어서 베이징발 도쿄행이 상행선이었다. 베이징에서 경성(서울)까지 27~28시간, 경성에서 도쿄까지는 부산~시모노세키(下關) 간 관부연락선을 포함해 40시간 정도 걸렸다. 일본은 후쿠오카(福岡)~쓰시마(對馬)~거제도~부산을 잇는 해저터널 철도 계획도 세웠다. 1938년 계획이 수립됐고 12번의 조사 후 42년부터 굴착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는 현 단계에서 백일몽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이 함축하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하다. 남북 분단을 극복하는 상징이자 동아시아 공동체 탄생의 중요 기제다. 이를 이루려면 추진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 거대해야 한다. 세계를 조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관련국의 공감과 노하우도 얻어야 한다. 국내 정치적 이유로 이를 시행하면 안 된다. 주변 나라와 척을 지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 경제적, 정치적 실효성이 없다. 세계를 경영한다는 마음을 갖고 폭넓게 봐야 한다.”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hwasan@joongang.co.kr

※기사 작성은 우아정 인턴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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