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 철도 착공 합의에 “제재 이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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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협력과 대북제재를 놓고 한·미 간 엇박자가 또 노출됐다. 남북이 지난 15일 고위급회담을 열어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에 열기로 합의하자 미 국무부가 “남북관계 개선은 북핵 프로그램을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고 재강조했다.

미 국무부, 금지 물자 북 반입 우려 #“남북 관계 개선, 비핵화 함께 가야” #문 대통령은 유럽서 “제재 완화를” #5·24 논란 이어 한·미 또 엇박자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날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 내용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문의에 “우리는 모든 회원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된 분야별 제품들을 포함해 유엔 제재들을 완전히 이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철도·도로 연결과 관련해 대북 물자를 반입하려 할 경우 물자 내용에 따라선 유엔 제재 위반이 될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북한에 모든 종류의 산업용 기계류와 운송수단, 철강 등을 공급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착공식을 하려면 미국이나 유엔군사령부 등으로부터 확실한 대북제재 면제나 제재 유예 조치를 얻어내야 하지만 통일부·외교부 당국자들은 미국 측이 착공식을 사전에 보장했는지에 대해 답하지 못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16일 기자들의 질문에 “협의를 계속해 갈 것”이라고만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에서 대미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지난한 과정”이라며 “미국도 안 된다는 것과 검토하겠다는 것도 있다. (한·미 간) 기싸움은 있다”고 기류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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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부의 이날 답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한국 정부의 대북 독자 제재인 5·24 조치 해제 가능성을 놓고 “우리의 승인 없이는 못 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나왔다. 미 행정부는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 위한 국제사회 단속에도 돌입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6일(현지시간)부터 모스크바와 파리,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를 돌기 시작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남북의 대북제재 완화 목소리에 대해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는 미국 정부의 강경론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대북제재 해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미 이견이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16일에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관계개선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북제재와 관련, 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면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회담 만찬사에서 “안보리 결의안을 전적으로 준수하는 가운데 명확한 기저 위에 대화를 구축할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취약해지지 않고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며 제재 유지 속 대화의 뜻을 밝혔다.

전수진 기자,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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