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름만으로 '흥행코드' 새로운 강자들이 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5호 08면

2019 봄·여름 런던패션위크를 가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열린 버버리의 2019 봄·여름 컬렉션.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의 첫 런던 입성 무대로 주목을 받았다. 사진 버버리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열린 버버리의 2019 봄·여름 컬렉션.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의 첫 런던 입성 무대로 주목을 받았다. 사진 버버리

일 년에 두 번, 어김없이 열리는 세계 패션위크가 매 시즌 다르게 느껴지는 건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해서만은 아니다. 매번 어떤 이유로든 특별히 주목받는 브랜드, 혹은 디자이너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밀라노·파리와 달리, 런던처럼 기존 강자들만의 리그가 아닌 새 얼굴이 들고 나는 열린 무대에선 더욱 그렇다. 지난달 14일(이하 현지 시각)부터 닷새간 마련된 2019 봄여름 런던패션위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디어·바이어들 사이에선 오프닝 전부터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디자이너들이 추려졌다. 흥미롭게도 리스트에는 세계적 명성을 갖추고 런던 컬렉션에 처음 데뷔하는 ‘뉴 페이스’ 군단과 런던에서 막 세계 무대로 싹을 틔우는 ‘뉴 키즈’ 군단이 공존했다. 경력부터 디자인 색깔, 브랜드 규모는 각기 달랐지만, 지금 이 순간 런던 패션을 주시하게 하는 이름임에는 분명했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그 현장을 찾았다.

런던패션위크 데뷔 10주년을 맞은 마리 카트란주의 2019 봄·여름 컬렉션. [신화통신=연합뉴스]

런던패션위크 데뷔 10주년을 맞은 마리 카트란주의 2019 봄·여름 컬렉션. [신화통신=연합뉴스]

버버리의 티시, 134벌 남녀 컬렉션으로 초대형 무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134벌의 남녀 컬렉션을 선보인 버버리. 올 3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리카르도 티시는 브랜드의 전통과 자신만의 스트리트 감성을 한 무대에 펼쳐냈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134벌의 남녀 컬렉션을 선보인 버버리. 올 3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리카르도 티시는 브랜드의 전통과 자신만의 스트리트 감성을 한 무대에 펼쳐냈다.

17년간 자리를 지켰던 전임자의 왕관을 이어받을 것인가,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줄 것인가-. 지난 3월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의 첫 무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 한 마디로 요약됐다.

컬렉션에 대한 추측이 일찌감치 나오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과거 나이키와의 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미국 래퍼인 칸예 웨스트와 둘도 없는 친구라는 이유를 들어 스트리트 무드가 런웨이를 뒤덮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지난달 17일 모습을 드러낸 남녀통합 컬렉션에서 티시는 무려 134벌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전통과 자신만의 강점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드러냈다. 전통과 규율을 준수하는 다른 한편에 다양성·펑크·반항적 문화가 공존하는 ‘영국적 스타일’을 동시에 선보였다. 컬렉션 주제 자체가 ‘킹덤(Kingdom)’이었다. 쇼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년 전 이곳 런던에서 졸업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지금 여기 버버리로 돌아오기까지, 개인적 삶의 여정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그는 런던 패션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이다). 이번 쇼는 이 역사적인 패션 하우스의 스타일 코드, 문화와 전통, 그리고 영국 문화의 다양성을 기념하는 것이다.”

BURBERRY

BURBERRY

컬렉션은 리파인드(Refined), 릴랙스드(Relaxed), 이브닝(Evening) 등 세 파트로 구성됐다. 금빛 메탈로 소맷단·끝단을 감싼 트렌치코트나 고급스럽게 깃털이 달린 코트로 우아함을 뽐내다가 어느새 속이 비치는 레이스 드레스, 동물 프린트 진 등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레드카펫용 블랙 드레스가 등장하며 180도 다른 무대를 연출했다.

BURBERRY

BURBERRY

BURBERRY

BURBERRY

남성복 역시 마찬가지. 슬림하지만 몸에 붙지 않는 ‘잉글리시 피트(English Fit)’를 내세웠고, 영국을 상징하는 우산을 벨트와 연결해 새로운 액세서리로 등장시켰다. 그러면서 주유소 직원 같은 유니폼 티셔츠나 줄무늬 반바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 보였던 이날 쇼장 건물처럼, 이 방대한 컬렉션은 디자이너가 다음 행보에 여지를 남겼다.

VICTORIA BECKHAM

VICTORIA BECKHAM

빅토리아 베컴(Victoria Beckham) 역시 이번 시즌 런던 패션위크에 처음 나선 인물이었다. 1990년대 5인조 여성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이자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아내로도 유명한 그는 2009년 뉴욕패션위크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데뷔한 디자이너. 초창기엔 자격 논란도 있었지만 10년 만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 고향인 런던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10주년이자 런던에서의 첫 쇼라는 기념비적인 날”이라 했던 그의 말처럼 컬렉션은 남달랐다. 지금껏 쇼에 다 모이지 않았던 베컴의 온 가족이 맨 앞줄에 앉았고, 쇼도 런던에서는 이례적으로 두 번 연거푸 열렸다. 또 빅토리아 베컴의 런던 매장 바로 옆에 자리한 쇼장에는 세계 각국의 VIP들이 초대됐다.

VICTORIA BECKHAM

VICTORIA BECKHAM

컬렉션 자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녀적 감성이라는 그간의 비판을 고려한 듯 이번 시즌엔 고급스러운 여성복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화이트 파워 슈트로 포문을 열더니 잘 재단된 바지에 란제리풍 상의, 큼지막한 가방까지 짝지은 스타일링이 잇따라 나왔다. 쇼 노트에 “10년을 돌아보며 빅토리아 베컴만의 강한 코드를 성립해야 할 때”라고 밝힌 디자이너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ALEXA CHUNG

ALEXA CHUNG

모델·방송인·패션칼럼니스트 등을 거치며 런던 패션의 아이콘이 된 알렉사 청(Alexa Chung)도 15일 컬렉션 스케줄에 이름을 올렸다. 자기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 그는 한 패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비즈니스를 심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컬렉션에 나섰다”는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ALEXA CHUNG

ALEXA CHUNG

쇼에는 ‘도착과 출발(Arrivals and Departures)’이라는 테마에 맞춰 크림색 트랙슈트, 꽃무늬 프린트 점퍼처럼 당장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의상들이 등장했지만, 주제 자체보다 알렉사 청이라는 ‘잇걸’의 스타일을 한데 모은듯한 의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지난 15년간 유행 아이템 중 그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호평받았던 것들, 가령 하늘하늘한 소녀풍 드레스와 복고풍 데님, 낙낙한 더블브레스트 재킷 등이 줄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스타일을 흠모하는 300만 명의 추종자(인스타그램 팔로어들)라면 모델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 스타일링 교과서가 될 만했다.

화려한 화장과 헤드 피스로 ‘매티 보반식’ 컬렉션 완성

MATTY BOVAN

MATTY BOVAN

신진 디자이너의 컬렉션이 ‘믿고 보는 쇼’가 되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할까. 이번 시즌 두 디자이너의 쇼는 여기에 답을 알려줬다. “지금 당장”이라고.

매티 보반(Matty Bovan)은 지난 시즌 첫 단독 컬렉션에서 이미 주가를 올린 신예. 하지만 이력만큼은 초라하지 않다. 2015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을 나와 ‘LVMH 졸업생 프라이즈’에 뽑혔고, 이후 루이 비통 주니어 디자이너를 거쳐 메종 마르지엘라의 컬렉션 화보 스타일링까지 맡았다.

MATTY BOVAN

MATTY BOVAN

MATTY BOVAN

MATTY BOVAN

이번 역시 그 기대에 응답했다. 처음보다 한층 더 극적인 의상들, 여기에 “패션쇼가 옷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철학을 그대로 이어가며 드라마틱한 화장과 헤드 피스(head-piece)를 함께 선보이는 ‘매티 보반식’ 컬렉션을 구축했다.

“현실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던 80년대 영화감독 데릭 자만(Derek Jarman)에 영감을 얻어, 과다 정보 시대에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표현했다. 겹겹이 입은 스커트와 티셔츠 드레스, 여러 프린트와 컬러의 충돌이 이를 상징했다. 여기에 각종 재료가 패션 소품으로 변용됐다. 뜨개실부터 호일, 꽃, 접시, 숟가락, 뒤집개 같은 부엌용품들이 헤드 피스에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글로벌 브랜드 코치와 협업해 만든 초대형 허리 백도 극적 효과를 더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쇼가 끝난 뒤 영국 패션계의 대모인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백 스테이지를 찾은 ‘사건’ 역시 이번 시즌 그를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에 올려놓는 계기가 됐다.

보반이 패션위크 첫날 흥행몰이를 한 ‘뉴 키즈’였다면, 리처드 퀸(Richard Quinn)은 마지막 날인 18일을 장식했다. 지난 시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자신의 두 번째 쇼를 찾으면서 순식간에 유명해진 그였다. 당일 쇼장은 기대감으로 찾은 관람객들로 가득 찼다.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 역시 또 한 번 프런트석에 앉아 있었다.

RICHARD QUINN

RICHARD QUINN

신데렐라처럼 유명해진 리처드 퀸은 다음 스텝을 어디도 아닌 자신의 본질에서 찾았다. 자신이 다녔던 예술 학교의 후배들을 패션쇼에 초대했다. “창의력이 우리 미래를 얼마나 밝혀주는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RICHARD QUINN

RICHARD QUINN

‘프린트의 왕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양한 꽃무늬를 선보였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런웨이에선 새로운 시도가 엿보였다. 얼굴부터 발까지 올 블랙 의상으로 쇼의 서막을 알린다거나 털로 덮은 바지와 드레스, 서로 다른 동물 프린트가 찍힌 코트 등을 다채롭게 등장시켰다. 앞뒤를 단단하게 고정해 위로 뻗쳐놓은 헤어 스타일링과 걷는 게 아슬아슬할 정도로 굽 높은 스틸레토 힐을 짝지어 맥시멀리즘의 시각적 효과를 한층 끌어올렸다.

한국 디자이너들 캣워크 나흘간 잇따라

REJINA PYO

REJINA PYO

한국 디자이너들의 캣워크 쇼는 나흘간 이어졌다. 14일 이정선 디자이너의 ‘제이 제이에스 리(J JS Lee)’를 시작으로, 다음날 최유돈 디자이너의 ‘유돈 초이(Eudon Choi)’, 17일 표지영 디자이너의 ‘레지나 표(Regina Pyo)’, 18일 박승건 디자이너의 ‘푸시버튼(pushButton)’ 컬렉션이 열렸다.

PUSHBUTTON

PUSHBUTTON

2014년 런던패션 위크 데뷔, 현지에서도 빠르게 잠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레지나 표’는 지난 시즌과 달리 과감히 힘을 빼며 눈길을 끌었다. 마치 옛날 앨범이나 잡지에서 발견한듯한 복고풍 무드가 주를 이뤘는데, 편안하고 신경 쓰지 않고 입은 차림새였다. “10대 시절 유행에 민감해하지 않고 옷장 속에서 있던 옷들을 대충 꺼내 이것저것 입었던 기억을 되살렸다”는 디자이너의 의도 그대로였다. 줄무늬 면 재킷, 품이 넉넉한 바지가 이를 대표했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바꿔 과일 프린트의 셔츠, 버뮤다 반바지, 슬립 드레스 등 당장 어디라도 떠날 듯한 옷차림이 이어졌다. “실제 여성들의 본심을 반영한다”는 브랜드의 철학대로, 하루하루 이미지를 바꿔 보고픈 여심을 그대로 보여준달까.

EUDON CHOI

EUDON CHOI

‘유돈 초이’는 프랑스 아르데코 시절 카펫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마니크 바흐(Manik Bagh·1881~1980)에 영감을 얻어 아이보리, 커피색 등 따뜻한 동색 계열 컬러가 겹쳐지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제이 제이에스 리’의 경우 천갈이를 앞둔 낡은 소파에서 모티브를 따 완벽해 보이는 가구 앞면과 허름한 뒷면의 대조를 옷의 상반된 디자인으로 연결지었다.

EUDON CHOI

EUDON CHOI

런던에 기반을 둔 세 디자이너와 달리 서울에서 활동하는 ‘푸시버튼’도 18일 런던에서 첫 해외 컬렉션을 열었다. 이번 컬렉션은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 영국패션협회가 지난 5월 체결한 패션산업 국제화 양해각서(MOU) 교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박승건 디자이너는 처음 나서는 세계 무대에 대한 부담감을 ‘사각에 갇힌 나’로 표현하며, 파워 숄더가 두드러진 의상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런던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연합뉴스·퍼스트뷰 코리아·각 브랜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