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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물꼬트는 이정표|정주영씨 북한방문 의미와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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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을 공식방문하기 위해 21일 서울 김포공항을 출발했다.
남북이 갈라선 이래 적지 않은 인사 등의 교류가 있긴 했지만 정회장의 이번 방북은 남북양당국의 「공식적인」허용이 뒷받침된 재계거물의 최초 북한방문이라는 데서 무엇보다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정회장은 21일 서울을 출발, 일본에서 이틀간 머무르다가 23일 오전 북경으로 가 이곳 북경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은 뒤 이날오후 조선 민항편으로 평양에 도착한다.
정회장이 「가까운」육로를 거치지 못하고 이틀씩이나 걸려, 그것도 제3국을 통해 겨우 평양을 방문하게 되는 것에서 남북간의 현실적인 거리가 얼마나 먼거리 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정회장은 설날 다음날인 2월7일까지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초청자인 허담을 비롯, 북한측의 고위층 인사들을 만나 북한의 경제발전 및 대외개방을 위한 북한내 경제특구 설치와 간척사업을 제의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위층인사 가운데 김일성이 포함돼있는 점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금강산 공동개발, 합영법에 의한 국내외에서의 합작투자방안 등 경제교류문제를 협의하고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고향친지방문 등 사적인 일도 병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 그룹 자체 일로는 금강산개발에 현대건설의 참여와 북한내 자동차부품공장 합작투자등을 논의하고, 재계를 대표해 남북한 경제인들의 상호교류문제를 북한측에 심도있게 제의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내용들은 남북간에 철통같이 막혔던 경제협력 및 상호교류의 물꼬를 트는 획기적인「역사적 사건」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회장의 이같은 두툼한 보따리를 받는 북한측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정회장의 방북사실에 대한 공식적인 확인조차 출발전날인 20일에야 해주는등 북한측이 여전히 조심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측이 정회장의 초청 의사를 처음 밝힌 것은 지난해 1월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조총련계 무역회사 사장인 손모씨를 통해 이같은 의사를 털어놓고 이의 성사를 위해 정회장과 친분이 깊은 「야히로·도시쿠니」삼정물산 회장에게 중개역할을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그후 지난해 8월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서한을 정회장에게 보내10월중에 고향 (통천)을 방문, 성묘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정회장은 당시 올림픽과 관련한 복잡한 일정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어 곤란하다는 회신을 전달했다.
이때도 같은 경로를 통해 의사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측이 이같이 정회장을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자 정부는 정회장과 함께 이를 예의 분석해 왔다.
그결과 정부는 정회강의 방북을 고향방문이라는 성격을 넘어 남북간의 교류, 특히 북한의 낙후된 경제상황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하나의 계기로 삼기로 했다.
이에 따라 막후절충을 통해 긴밀하게 얘기가 오갔고 결국 북한측은 지난해 12월1일 금강산관광특구 공동개발 등 경제협력사업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을 담은 허담 명의의 초청장을 다시 보내게 된 것이다.
북한측이 이렇게까지 나오게된 배경은 정·경 분리의 원칙에서 경제부문에 유연성을 발휘해도 무방하다는 판단을 하게된 것이 첫째 이유다.
5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 세계 청년학생 축전을 위한 무리한 시설투자 등에 따른 경제난에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남측의 힘을 빌자는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금년도를 「경공업의 해」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여기에는 6공화국 들어 취한 7·7선언 등 일련의 대북 유화조치에 대한 진실성을 북측이 어느 정도 믿게됐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관측이 있다.
그러나 이같이 북한측이 종전과는 다른 유연성을 보인다해서 기본적인 대남 전략을 철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북한측이 정회장의 방북사실 등을 계속 부인하면서 우리측을 비난해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물론 20일에는 정회장의 방북을 방송을 통해 보도했고 우리측과도 내막적으로는 양해가 이루어졌지만 현대가 북한산 모시조개 40㎏을 수입했을때 이를 허위라고 비난하고 사진도『85년 수재구호물자 제공때 찍은 것』이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직 진실된 의미에서의 개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어쨌든 북한이 예상될 수 있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이만큼이나마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은 그런 대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같은 북의 변화조짐에 탄력성있게 대응,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안희창·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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