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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우울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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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호 35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다 보니, 유방암 수술을 받고 가슴을 잘라낸 자신의 삶을 시크하게 그린 대목이 나온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자 미용실에 가서 아예 밀어버린 사연도 그렇고, ‘암이라는 고통을 얻었으니 이제 술 담배 정도의 위안은 허용해 줘도 되지 않냐’며 날마다 굴뚝처럼 연기를 뿜어대는 너스레도 무척이나 귀엽다.

국내 60만명 우울증 앓고 있어 #우리는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무얼 위해 그토록 달리고 있나 #한 사회가 절망 이겨내기 위한 #절실한 처방전은 농담과 유머

‘암은 좋은 병이다. 얼굴 새파랗게 질려 병문안 오는 사람들이 멜론 같은 걸 사온다’며 미소 짓는 그는 이미 삶을 달관한 듯 보인다. ‘우리 인간은 셋 중 하나, 암에 걸린다’며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그도 우울증이 암보다 몇 배나 더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주위 사람들이 몇 배나 더 차가웠고,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갔다고 떠올린다. 사람들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자신이 변하더라는 것이다.

‘이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폐인이 되어 몇십년이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내심 암에 걸린 사람이 부러웠다.’ 세상에나, 암에 걸린 사람이 부러웠다니! 우울증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75억 명 인구 중에서 3억50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만도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더라도 무기력과 함께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으리라.

요즘 저녁식사 자리에선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삶이 우울하다’는 자기고백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오지 않는 건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 정도로 많이 팔린다는 건, 이제 책이 사회현상이 되었다는 뜻이며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오늘이라도 당장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어하는 우울한 청소년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 아닌가! ‘헬조선’이라 외칠 만큼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청년들도 우울하다. 연애도 결혼도 취직도 내 집 장만도, 어느 것 하나 행복한 삶의 여정이 되지 못하는 그들에게 사회는 모두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노인 자살률은 단연 세계 1위. 사회적 수명이 짧아지고 직장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느라 가족관계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들에게 삶의 위로가 되어줄 삶의 동반자는 연금만큼이나 부족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가고 있지만, 우리가 얻은 경제성장은 행복을 대가로 바친 명예롭지 않은 훈장이다.

가타다 다마미가 쓴 『배부른 나라의 우울한 사람들』을 보니, 우리가 일본 사회와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불안해졌다. 노동시간은 최상위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인 우리나라가 그들의 과거와 많이 닮아 있었다. ‘1억 명 총 우울사회’라는 원제가 말해주듯이, 일본 또한 우울증이 사회현상이 된 지 꽤 된 모양이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 이후 일본은 ‘우울해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돼 버렸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언제 급여가 삭감될지 모르고, 언제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가 올지 모르기에 불안해하며 일하는 반복된 일상.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기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도 힘든 그들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닮았다. 물가는 치솟지만 나의 월급으로는 삶의 질을 유지하기 힘들어 소확행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편의점 인생 말이다. 부모를 부양하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으나, 자식은 독립하겠다며 내 노후의 의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낀 세대’ 중장년층에게 삶은 더없이 각박한 시간으로 감각되리라.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리고 있는 걸까? 최근 들어,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내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무얼 얻자고 그토록 달리고 있는가? 근본적으로 삶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 봤자 결국 별거 없어’라는 마음이 더 살 의지를 꺾고 자살하게 만든다는 우울증 환자의 고백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면, 잠시 멈춰서 삶을 정비해야 한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가 그저 그동안 계속 달려왔고, 다들 달리고 있기 때문이라면, 이 무한질주는 멈춰야 한다. 삶은 마라톤이나 100m 질주가 아니라, 탐험이고 여행이며 산책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담배의 한쪽 끝엔 불이 있고 반대편 끝엔 바보가 있다.’ 골초인 자신을 노골적으로 놀릴 만큼 시크하면서도 시니컬한 작가 커트 보니것. 웃음조차 터져 나오지 못하는 촌철살인 유머로 삶의 주요 대목마다 멍하니 관조하게 만들었던 그도 ‘살다 보면 삶은 때때로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위안을 생각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 부딪히기도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한 사회가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절실한 처방전은 농담과 유머라고 말한다. 우리 삶을 엉뚱하게 뒤집어보기도 하고, 뻔하지 않은 결론으로 반전을 꾀하는 농담 한 바구니 말이다. 우울해 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할 의지조차 없는 친구를 찾아갈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선물이다. 그래도 삶이라는 산책로에서 한번 더 코너를 돌아보자고 말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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