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지점없는 은행'에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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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HSBC은행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은 '다이렉트 뱅킹'을 곧 한국에 도입하기로 해 금융권에 파장이 예상된다. 다이렉트 뱅킹은 지점 없이 인터넷.전화만으로 영업하는 일종의 '온라인 전용 은행'이다. 지점에 들어가는 인건비.임대료 등을 아껴 고객들에게 수수료를 대폭 깎아준다. 이미 증권업계에선 지점을 없앤 대신 수수료를 대폭 낮춘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이 싼 수수료로 주식을 거래하는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어떤 서비스인가=2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HSBC는 'HSBC 레드'란 이름으로 다이렉트 뱅킹을 추진 중이다. 이 서비스는 지점이 없다는 점만 빼면 기존의 인터넷 뱅킹과 비슷하다. 예컨대 고객들은 인터넷으로 은행 사이트에 접속한 뒤 계좌이체나 송금 등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거래할 때 문제가 생기면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콜센터 직원들이 상담을 해준다. 현금을 뽑아 쓰려면 통장과 입출금기(ATM) 등이 필요한데 HSBC는 증권사 등 다른 금융회사와 제휴해 통장을 만들게 할 계획이다.

◆왜 도입하나=HSBC는 지점이 11개뿐이다. 국민은행(1107개).신한은행(966개).우리은행(784개) 등과 경쟁하기 힘겨울 수밖에 없다. HSBC는 한국 시장에 욕심을 내고 있지만 현지법인이 아니어서 지점을 만들기가 까다롭다. '지점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내놓은 맞불 전략이 바로 다이렉트 뱅킹이다. 무엇보다 최근 고객들이 인터넷 뱅킹을 선호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은행.우체국 등 20개 금융회사의 거래에서 인터넷 뱅킹이 차지하는 비중(30.9%)은 지점 창구의 비중(29.8%)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소비자 혜택과 업계 파장은=HSBC는 다이렉트 뱅킹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이체.대출을 할 때 수수료를 받지 않고, 거래 때 이용할 통장(수시 입출금식)에 연 3%의 이자까지 줄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은 물론 수시 입출금 통장에 0~0.3%가량의 쥐꼬리 이자를 주는 국내 은행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최근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던 은행들도 자극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출 경쟁은 물론 지점 늘리기와 인수합병(M&A) 등에 치중해 온 은행들로선 HSBC의 새로운 '저비용 고효율' 영업에 많은 고객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온라인 전문 증권사들이 출현했을 때처럼 수수료 등에서 '가격파괴' 바람이 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 e-비즈니스부의 허세녕 부장은 "일단 대응방법을 고민 중"이라며 "다만 수신.이체는 모르지만 대출 등에선 인터넷 비중이 작고 펀드 가입 등도 직원들을 직접 만나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고객이 많아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걸림돌은 없나=금융실명제에 따라 은행 고객은 계좌를 만들 때 지점을 찾아 신분증.얼굴 등 본인 확인을 하게 돼 있다. HSBC는 직원이 직접 고객을 방문하거나, 고객이 HSBC와 제휴를 맺은 금융회사 지점 등을 찾아 실명확인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은행총괄팀 김영대 부국장은 "최근 재정경제부와 HSBC가 실명제 문제에 대해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감원도 은행법상 문제가 없는지 등을 검토해 영업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김자봉 연구위원은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차별화한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전자금융거래는 보안 등의 신뢰성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는 만큼 지점을 병행해서 늘리지 않으면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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