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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도 우리상품에 "방어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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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EC(유럽공동체)가 한국에 대해 잇달아 반덤핑공세를 가하고 있어 미국에 이어 EC와의 통상마찰이 가열되고 있다.
92년 시장통합을 앞두고 있는 EC는 각종 보호주의적 수입규제조치를 취하는 한편 한국시장을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요새」라고 인식하고 시장 개방 압력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반덤핑에 의한 EC의 대한 수입규제조치는 지난 86년5월 자전거 타이어튜브에 대한 반덤핑 조사 재심을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확대되어 왔다.
그 이후 올 12월 현재까지 EC는 우리상품 중 옥살산·폴리에스터사·폴리에스터필름·VTR·콤팩트디스크플레이어(CDP)·비디오 테이프·컬러TV·글루타민산과 염·사진앨범·텅스텐 등 모두 10개 품목에 대해 반덤핑 판정을 내렸거나 조사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정판정이 내려진 것은 옥살산(20.2%)과 폴리에스터사(8.1%)의 2건.
그러나 VTR(5.2∼29.8%) 비디오 테이프 (4.5∼10.8%)에 대해 이미 잠정관세가 부과되었으며 12월중에만도 사진앨범·텅스텐 등 2개 품목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추가로 개시하는 등 EC의 대한 반덤핑 공세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EC의 대한 반덤핑 규제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86년까지는 대한 반덤핑 건수가 연 1건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6월23일 반덤핑 및 상계관세법을 개정하면서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해 EC의 총 반덤핑건수 30여건 중 우리나라에 대한 것이 6건에 달하고 있다.
EC의 반덤핑 공세로 국내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은 VTR. EC는 지난 7월 VTR에 대해 25.1∼29.8%의 높은 반덤핑 잠정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이 조치로 대우전자 29.8%, 금성전자 26.4%, 삼성전자는 25.2%의 잠정덤핑 관세율을 적용 받게돼 지난해 3사 합계 1백22만4천대에 달하던 대 EC VTR 수출이 올 9월부터는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빚었다.
결국 지난 14일 대우·금성·삼성 등 국내 3대 VTR 수출업체들은 대당 수출가격을 2백46달러로 올리는 가격인상 제안서를 EC에 제출했다. 그러나 EC가 이를 받아들여 반덤핑 관세를 철회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인 상태다.
특히 EC는 최근 예비판정보다도 높은 확정관세를 부과한다든가 예비판정에 앞서 소급관세를 적용하는 등의 이례적인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여 국내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최초로 반덤핑 확정 판정을 받은 옥살산의 경우 지난 3월의 예비판정에서 7.07%의 잠정관세를 받았으나 7월의 확정판정에서는 20.21%의 고율 덤핑관세가 매겨져 연간 1백만 달러에 달하던 대 EC수출이 심한 타격을 입고 있다.
또 콤팩트디스크플레이어(CDP)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로 예정된 잠정관세 공식발표를 앞두고 EC 집행위가 3개월까지 소급해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전례가 없던 일로 EC의 대한 수입규제 강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EC의 총 수입액 중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비중이 6.6%(87년)에 불과하고 한국의 총 수출 중 대 EC 수출비중도 13.9%(87년)에 지나지 않는 상태여서 EC가 이 같은 반덤핑 공세를 취하는 것은 한국을 「제2의 일본」이라고 보는 경계심리가 그 배경에 짙게 깔려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92년 시장통합을 앞두고 한국의 EC 진출을 조기에 방어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게다가 경쟁국인 일본이 배후에서 EC와 합세, 대한 수입규제를 부추겨 자국의 대 EC 기득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VTR에 대한 고율의 덤핑관세 부과에 있어서 유럽의 제소기업들 중에는 일본의 빅터사가 프랑스의 톰슨사와 합작으로 서독에 설립한 J2T비디오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충기 박사(통신개발연구원·전 EC 집행위 근무)는 『EC의 대한 수입규제는 일부 품목의 대량 수출과 EC 시장내의 수출선 집중 등 우리나라의 대 EC무역정책 부재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며 『92년 EC통합으로 역외 제3국에 대한 수입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에 미리 대비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점증하는 EC의 보호주의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EC 현지 투자를 늘리고 EC역내 부품 조달 비율도 높여 장기적으로 「EC기업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일부 품목의 소나기식 수출을 자제하고 수입선을 일본으로부터 EC로 전환하는 등 무역 구조의 조정을 도모하는 한편 품질개선 등 대한 이미지 제고에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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