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스포츠가 되다… 유소년층 붐 조성·진학 혜택 긍정적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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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바둑은 스포츠다''아니다'하는 논란은 지난 수년간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세계 최강의 한국바둑을 소중히 여겨 제도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바둑이 스포츠면 고스톱도 스포츠냐 하는 비아냥도 없지 않았다.

지난 17일 대한바둑협회가 경기단체로 대한체육회에 가맹했다. 아직은 준가맹이지만 체육회 이사회가 바둑을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이제 오랜 논란은 종식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엔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운동은 땀 흘리며 뛰는 것이고 바둑은 아니다. 이 문제는 두뇌스포츠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와 더불어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바둑계는 대체로 환영 일색이다. 체육회 가맹을 위해 대한바둑협회 창설을 주도했던 한국기원의 허동수 이사장은 ^유소년층 바둑붐 조성^청소년 상급학교 진학 혜택^정부의 바둑계 지원^바둑의 세계화 기틀 마련등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며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체육회 정가맹과 올림픽 종목 채택 등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과거 유명 프로기사들이 충암학원에 다닐 때 그들은 축구나 배구 같은 운동선수로 등록돼 있었다. 지금은 많은 학교에서 바둑 특기생을 뽑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사라졌지만 이런 편법은 꽤 오랫동안 존재했다.

바둑은 또 정부기관에서 지원을 해주고 싶어도 근거가 미약했다. 이런 문제들이 이번 체육회 가맹을 통해 해결됐다.

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프로 9단)교수는 체육회에 가맹한 대한바둑협회가 아마추어 단체라는 점에 주목하며 프로 쪽보다는 아마추어 쪽에 먼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도 "아마추어가 살아야 프로도 설 곳이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 바둑계가 제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로기사들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승부사답게 단서를 빼놓지 않았다.

조훈현 9단은 "산 넘어 산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고, 유창혁 9단은 "세계적 흐름의 뒤를 따라야 한다. 준가맹을 넘어 정식 가맹 경기단체가 되기까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룡 9단은 "바둑이 체육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했고, 한 노장 기사는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운동 선수냐"고 반문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아무튼 이번 바둑의 체육회 준가맹 사건은 수천년 바둑사에서 꽤 중대한 의미를 띤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바둑은 때로 예(藝)였고 도(道)였으며, 때로 '잡기'였고 승부였다. 도장과 동문이 있고 스승과 제자가 있었으며 한번 전문기사가 되면 그것을 천직으로 알고 죽을 때까지 바둑 시합에 나갔다.

그러나 '선수'가 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바둑의 스포츠화엔 '단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도 있다. 외따로 떨어져 자신의 룰과 전통을 이어온 바둑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포츠로 정한 이상 이제부터 스포츠의 룰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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