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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000,000,000,000,000원 부채 … “글로벌 경제 겨울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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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는 회복 사이클로 접어들었고, 특히 미국 경제는 최상의 컨디션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 기업 이익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주식 시장은 2009년 경기 침체 이후 4배나 올랐다.

금융위기 10년 … 월가 전문가 전망 #부채 증가 속도가 성장률 추월 #“미국 호황 2년 남아 … 거품 주의를” #“빚 많은 중국 탓 5~10년 내 위기” #“미국 강세장, 위기 덮을 것” 반론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채권을 매입하는 등 유례없는 양적 완화에 나서면서 경제 회복을 앞당겼다. 그러나 사상 최대로 불어난 천문학적 부채가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Fed가 기준금리를 서서히 올리면서 돈줄을 조이기 시작하자 대외채무가 많은 신흥국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부채는 올해 1분기 247조 달러(약 27경 600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0년 전보다 70조 달러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 1분기에만 8조 달러가 증가했다. 글로벌 가계와 비금융 기업, 정부 부문을 합친 부채는 186조 달러까지 늘어났다. 금융 부문 부채는 61조 달러다.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무려 318%에 달했다. 세계 빚 규모가 재화·서비스 생산량의 3배를 넘는다는 얘기다. 부채가 늘어난 상태에서 미국이 앞장서서 긴축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니 약한 고리가 끊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10년 전 암울했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론이 뉴욕 월가를 중심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위기가 오는 시기를 예상하는데 있어서는 이견이 있지만,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뉴욕 투자자문사인 에버스코어-ISI의 이코노미스트인 딕 리프는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은행을 둘러싼 규제가 강화된 덕에 투명성을 강화했지만 그래도 늘어나는 빚이 골칫거리”라면서 “더 큰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GDP 성장률을 넘어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레이 달리오, 레이철 젬바, 딕 리프(왼쪽부터).

레이 달리오, 레이철 젬바, 딕 리프(왼쪽부터).

억만장자 투자자 레이 달리오는 현재 미국 경제를 야구 경기에 비유하면서 7이닝에 와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미 경제 전문채널 CNBC에 출연해 “미국 경제는 7회를 치르고 있으며, 앞으로 2년 정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일 10년 전 금융위기 원인을 분석한 무료 저서 『대 부채 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템플릿』을 발간한 달리오는 현재 경제 환경을 1929년 대공황 시절과 비교할 때 1935~40년에 와있다고 비유했다. 대공황 때처럼 지난 10년간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빈부 격차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달리오는 “다음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은 발생할 거품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2년간 커질 리스크에 대비해 통화정책은 공격적이기보다 방어적인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Fed가 시장에서 원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JP모건이 금융위기 10주년을 맞아 48명의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의 원인분석과 전망을 담은 168페이지의 대형리포트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형성 과정을 설명했다. JP모건의 최고 퀀트분석가인 마르코 콜라노비치 박사는 “유동성 위기가 금융시장을 강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번 위기가 닥치면 지난 50년간 경험해보지 못한 주식시장 붕괴와 사회 불안정이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콜라노비치 박사가 주장하는 유동성 위기는 지난 10년간 인기를 끌어온 패시브 방식의 투자 기법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패시브 펀드는 단어의 뜻대로 수동적으로 시장지수를 따라간다. 인덱스펀드라고도 한다. 시장 평균 정도의 수익률을 추구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싸고 안정적이다. 반면 액티브펀드는 말 그대로 적극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한다. 유력 펀드매니저들이 유망한 주식이나 채권 종목을 꼽아주고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을 추구해온 투자자들이 고수해왔다.

2009년 이후 지속해온 강세장이 저물고 약세장으로 접어들면 뉴욕증시에서 주류로 떠오른 패시브 펀드가 액티브 펀드보다 타격이 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 주요 지표가 곤두박질치면 시장 지수를 따르는 패시브 펀드의 수익률도 덩달아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이 같은 패시브 펀드가 갑작스럽고 심각하게 주식시장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데 기인한다. 지난 2월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1600포인트 급락하고, 2015년 8월 1100포인트 하락한 경우가 패시브 펀드에 의한 발작적인 매도 때문이라는 게 콜라노비치 박사의 설명이다. 아주 조그만 악재가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거대한 해일로 변하면 이 정도 급락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이몬드 제임스의 수석 투자전략가인 제프리 소트는 이 같은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 강세장이 7~8년간 더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의 강세장이 워낙 세기 때문에 어떤 위기도 이를 막아내기 힘들다고 분석한다. 소트는 “1949∼66년 중간에 잠시 밀리는 모습이 있었지만, 강세장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1982∼2000년에도 1987년 위기가 있었지만, 이 또한 강세장을 막진 못했다”고 말했다.

뉴욕대 국제문제센터의 레이철 젬바 연구위원은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당장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5∼10년 내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본다”면서 “위기의 진앙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이 미국과 무역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떠나, 엄청나게 늘어난 부채로 인한 생산성 저하 문제가 눈에 띄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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