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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만으론 풀기 어려웠다|89전기대입 학력고사 출제경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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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9학년도 전기대입시 학력고사문제는 단순한 지식보다 이해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응용추리력 등 고차원적인 지적능력을 묻는 문제가 대거 출제돼 종전의 출제경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출제판도를 나타냈다..
우선 형식상 현 제도에서 가장 고도의 출제형태인 「서술형주관식」문항이 과목별로 1문항씩 는 데다 단구형·완성형 문제도 논술형에 가깝게 출제돼 주관식부담이 늘었다.
객관식도 국어에서 이해·응용력이 필수적인 감상·해석문제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20문항이나 출제되고 한문에서 처음으로 번역문체가 나왔으며 영어·제2외국어도 문법적 지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고 문장의 이해와 해석이 강조됐다.
수학의 경우 단순한 공식대입만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는 33문항(자연계) 중 단 3개에 불과했고 사회과목들도 「암기과목」이라는 종전의 「고정관념」을 벗고 이론과 현실접합이 강조됐다.
문제의 유형도 기존참고서 등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문제가 과목별로 20∼30%씩 선보여 암기위주의 학습을 해온 수험생들을 당황케 했으며 국어에서 4개의 지문이 교과서 밖에서 출제되는 등 낯선 소재로 수험생들의 사고·추리력이 측정되며 전체적인 난이도를 크게 높여놓았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현실성의 강조로 과학과 실업과목 등의 경우 이론위주의 문제가 배제되고 실험문제가 크게 늘었으며 실제 생활에 응용되거나 연관지어지는 문제들이 강조됐고 사회과목들에서도 도표나 연표·지도 등을 통한 시각적인 문제가 대폭 늘었다.
또한 윤리·사회 등의 경우 민주화·국제화추세에 따른 시사성 짙은 문제들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 입시도 사회현실에 민감하다는 점을 느끼게 했다.
과목별 특징으로는 국·영·수 등 도구과목들이 특히 어려워 학력고사제도 실시이후 상대적으로 비중이 줄였던 이들 과목들의 득점력이 중요한 당락의 중요변수로 비중이 커졌으며 이 같은 경향은 대학별출제의 본고사부활을 앞둔 암시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과학과목의 경우 물리와 화학에 비해 생물·지학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선택과목간 난이도에 다소의 평차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과목의 경우 특정단원에 편중돼 출제되거나 너무 외진 곳에서 출제되기도 했고 특히 문제가 어려워지면서 앞으로 교과서외의 참고서위주학습 또는 과외 등 특별학습을 초래할 가능성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번 출제는 문제의 질이 높아지고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 「수준작」이라는 평가로 특히 지난해 큰 문제가 되었던 채점시비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 같은 출제판도의 변화는 대학입시가 대학교육 수강능력의 측정이라는 측면 외에도 고교교실의 학습방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할 때 내년 이후에 응시할 예비수험생들에게도 학습패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암기보다 이해와 응용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늘면서 이제는 요점정리식의 학습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꿔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조언이다.
이에 따라 징검다리식 지식의 나열이나 공식의 대입보다는 논리력과 추리력을 키우는 학습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로 남게 됐으며 객관식도 주관식처럼 대비해야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언도 있다.
주관식문제의 경우에는 오히려 문제내용 자체로는 객관식보다 쉬웠고 공동출제가 계속되는 한 채점의 공정성 등에 따른 한계가 있어 이체는 「주관식 공포」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선지원입시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으로 올해도 우수학생의 대거탈락과 재수생 증가 등이 더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수험생들은 합격·불합격에 연연하지 말고 빨리 마음을 가다듬고 새 출발의 준비가 필요하며 과열입시에 따른 근본적인 개선방안도 시급히 정책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할 시점이다. <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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