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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당 힘 겨루기…총리인준 진통|4당의 미묘한 입장차이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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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16일 강영훈 국무총리 임명동의 안 처리에서 여야 4당은 미묘한 입장차이를 노출시켰다.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 안 부결이란 쓰라린 경험이 있는 민정당 측은 공화당의 동조로 통과를 장담하면서도 예상 밖의 사태가 일어날까 봐 속을 태우고 있는데 평민당은 당의 선명성 부각을 위해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결정했고, 찬성 의사를 보여온 민주당도 뒤늦게 강 총리의 전력을 문제삼아 반대로 돌아 또다시 선명 경쟁을 벌이는 인상이다.
민정당 측은 15일 오후부터 평민당에 이어 민주당도 총리 동의 안 처리에 반대한다는 당론을 정하고 나서자 초비상이 걸려 15일 밤과 16일 오전 당직자 및 중진급의원들이 총 출동, 대야 득표 활동을 벌이는 등 부산.
그러나 개별 접촉에선 동의할 뜻을 표명하면서도 이미 결정된 당론을 개별적으로 어길 수 없는 각 당의 당내 사정 때문에 좀처럼 포섭(?)되지 않아 곤혹스런 표정들.
당직자들은 민주당 쪽이 강 총리서리가 「중앙 정보부로부터 돈을 받아 유신을 홍보했다」는 일부 보도에 영향을 받아 부가 쪽으로 급선회한 점을 중시, 이를 해명하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
박준규 대표·김윤환 총무·박희태 대변인 등은 미 하원의 「프레이저」보고서 등을 복사해 배포하면서 『당시 강 총리서리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박 대통령이 그를 내 좇아 낸데 대해 뒤늦게 미안한 마음에서 보내준 것일 뿐』이라며 『유신홍보는 커녕 유신 철폐를 주장해 당시 정부에선 이를 문제삼기도 했었다』고 해명.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직자 회의에선 그때까지의 대야접촉결과와 각 당의 동향을 토대로 표 점검을 실시했는데 참석자들은 『아슬아슬하다』며 한결같이 걱정.
동의안이 처리되려면 과반수출석에 과반수찬성이 나와야 하는데 강 총리서리를 제외한 2백98명 전원이 모두 참석할 경우 동의에 필요한 표수는 1백50표.
민정당 의원이 1백25명(강 총리서리 제외)이므로 최소한 타당과 무소속에서 26표를 더 확보해야 되는데 한때 공화당 쪽도 상당수 부표 쪽으로 돌고 있음은 물론 민정당 내부 반란도 예상된다는 말이 나돌아 당직자들은 아연실색.
한 당직자는 『제2의 정기승 파동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고 크게 걱정하면서『그렇게 되면 파국이고 끝장이다』고 한숨.
그러나 박 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 『다 양식이 있는 사람들인데 파국을 원하겠느냐. 잘 되리라고 본다』고 낙관.
평민당은 16일 아침 시내 모 호텔에서 총재단 및 당3역 연석회의를 가진데 이어 본회의직전 국회에서 의총을 열고 강 총리서리의 임명동의를 반대하되 그 방법은 기권하는 방식으로 결정.
특히 표결에 앞서 소속의원의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강 총리서리 임명의 위헌성을 충분히 부각시킨 뒤 강 총리서리가 이 시대 총리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부적격 성을 지적할 방침.
당내에서는 이날의 반대방법을 놓고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말자는 강경론에서부터 퇴장하자는 안과 앉아서 기권하자는 안, 부표를 던지자는 온건론까지 나왔으나 의원들이 국회의 주인이라는 점을 감안, 회의장에 들어가 기권하기로 결정했다는 김원기 총무의 설명.
김 총무는 이날 강 총리서리의 임명동의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법적인 양심이 살아있다면 정기승 씨 사태와 같은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공화당에도 젊은 의원들은 반대하는 것 같다』고 말해 은근히 공화당의 반란표를 기대.
김 총무는 『법질서와 체제수호를 노 대통령이 강조하면서 법질서의 기본인 헌법을 짓밟는 태도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다』며 평민당 측의 국민여론 논을 개진하며 다시 한번 위헌성을 강조.
김 총무는 『위헌성은 민정당조차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상수 대변인은 『강씨의 미국에서의 행적까지 드러난 마당에 반대는 기정사실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강 총리서리 임명동의 부결을 낙관.
민주당은 지난번 노태우 대통령의 개각을 놓고 5공 청산의지가 빈약하다고 비판하면서도 강영훈 총리서리에 대해선 따로 떼어 「묵시적 인정」쪽으로 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으나 강 총리서리의 유신시절 전력시비를 계기로 「동의 반대」쪽으로 급선회.
민주당은 당초 「임명절차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평민당 측의 입장에도 동조 않고 관망적 자세를 취했다가 강 총리서리의 유신지원 행적이 나오자 노 정권의 인사 쇄신에 대한 비판 의견이 모아져 쉽게 반대쪽으로 의견 집약.
김영삼 총재는 15일 오후 「강 총리서리의 미국 체류 시 운영했던 한국문제연구소가 유신체제 홍보역할을 했다」는 「프레이저」보고서의 진위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실무진들이「프레이저」보고서를 입수, 『유신지원이 틀림없다』고 보고.
이에 따라 16일 오전의 확대간부회의에선 신속하게 반대쪽으로 당론을 모았는데 황명수 부총재, 박용만·박관용 의원 등은『우리가 그 동안 내놓고 의견을 보이지 않은 것은 정국의 어려움을 막기 위해서였다』면서『과거의 청산을 과거 비리 선전에 앞장섰던 인물에 맡길 수 없다』며 부적격 인물로 규정.
이날 낮 전경련빌딩에서 열린 의총에서는 『노 대통령은 강 총리서리 임명을 지금이라도 취소, 총리를 새로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반대로 돌아선 것은 보수연합의 파트너가 민주당이라는 소문이 돌아 이것을 벗어나려는 작전이라고 분석
공화당은 6공에 들어 인사문제에 관한 한 계속 협조를 해오고 있는데 이번 총리 동의안에도 찬성키로 당 논을 결정.
공화당은 다른 당보다 하루 이른 14일 의총을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총재의 확고한 입장에 따라 반대의견은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개각발표가 나온 후 평민당 측에서 위헌시비를 걸고 나오자 김종필 총재는 논리적 타당성 때문에 입장을 유보하며 『법리상 위헌임에 틀림없다』며 『더구나 국회 개회 중에 국회 동의 절차도 없이 임명하고 국무위원 제정 권까지 행사케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다소 부정적 반응을 비쳤었다.
때문에 일부 소장의원들은 14일 의총 결론에 대해 『당 논이 왜 갑자기 바뀌었느냐』고 숙덕거리기도 했으나 당 논에 수긍하는 모습.
15일 민주당이 강 총리서리의 전력을 들어 반대의사를 표시한 뒤에는 당사나 각 의원들 집으로 반대를 종용하는 전화가 무수히 걸려왔지만 윤성한·김현 의원 등 소장파의원들도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선 안 된다』며 당 논에 따를 태도.
김 총재는 16일 오전 김용채 총무에게 의원들을 다시 한번 점검할 것을 지시하고 『우리는 정계와 사회의 안정이란 요지부동의 궤도를 간다』며 『세상에 따지면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는데 거기에 인과를 붙이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 <허남진·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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