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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물 "공포"|「방사능 고무장갑」파문 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방사능 오염위협에 못살겠다.』
『안전지역으로 이주대책을 세워달라.』
경남양산군 고리원자력발전소부근 효암·길천·월내 3개마을 6백17가구 4천여주민들은 원전핵폐기물매립사건과 관련, 불안에 떨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가동 이후 최초로 발생한 폐기물 불법매립으로 과학기술처조사반의 현장조사에 이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이번 사건은 방사능오염에 대한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주민들은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원전1호기 가동이 시작된 78년4월부터 85년10월까지 7년6개월 동안 발전소에서 배출된 일반 폐기물을 불법 처리한 사실이 밝혀져 방사능오염물질도 섞여 있을 것이라고 주장, 철저한 진상조사를 또 다시 요구하고있다.

<발단>
핵폐기물이 불법 매립된 것은 지난 10일 현지주민들이 하루전인 9일 고리핵발전소후문 땅속에 핵폐기물 2드럼이 묻혀있다고 고발함에 따라 긴급조사에 나선 공해추방운동연합(의장 최열)조사반에 의해 밝혀졌다.
발전소앞 효암리마을뒤 3백여m 떨어진 공터에서 핵폐기물이 든 드럼 61개와 고무장갑·덧신 등이 대량 불법으로 묻혀있어 현지측정결과 고무장갑에서 0.2밀리템이 오염돼 있음이 확인됐다.

<주민요구>
핵폐기물이 마을 인근에 묻혀있는 사실이 드러나자 주민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고무장갑 등을 수거, 12일 과학기술연구원에 오염측정을 의뢰하는 한편 피해보상과 이주대책을 한전 측에 요구하고 나섰다.
3개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방사능 누출 등을 우려, 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안전지역으로 이주해줄 것을 한전 측에 요구해 왔으나 핵발전소 측은 『절대 안전하다』며 주민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오다 이번 사건이 터지자 『어떤 경로로 방사능이 오염된 덧신 등이 매립됐는지 모르겠다』며 뒤늦게 해명하고 있다.
한편 상경한 주민들은 결의문을 통해 『핵발전소가 가동한 지난 78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백93건의 원자로발전정지 및 증수누출사고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핵발전소의 가동중단 ▲그동안 발생한 핵발전소의 사고경위 발표 ▲주민이주대책보장 등 7개항을 요구했다.

<조사>
과기처 조사단은 14일 매립지 바닥의 토양에서 방사성물질로 자연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코발트60파 세슘137을 검출해 냈으나 발굴된 드럼에서는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주변마을의 식수와 토양에서도 방사능은 측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매립지에서 측정된 코발트60의 농도는 16.5∼22.3피코귀리, 세슘 137의 농도는 2.4∼10.7피코귀리.
이 정도의 코발트60에 가까이 할 때 1년간 쬘 수 있는 방사능은 1밀리템 정도로 일반인의 1년간 허용치에 비교하면 5백분의1에 불과, 인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핵폐기물로 처리될 쓰레기가 발전소 밖으로 누출된 것은 원자력법위반으로 관리상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문제점>
핵폐기물은 비록 오염정도가 낮더라도 쉽게 소멸되지 않고 오랫동안 타물체를 오염시킨다.
더욱이 원전의 폐기물은 1차 처리를 거친 후 소석회와 시멘트를 혼합, 폐기물을 고체화하여 특수철강으로 된 드럼통 안에 넣어 지정구역 3백년동안 보관토록 하고있다.
이 때문에 원자력법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핵폐기물인 장갑·덧신 등을 허술히 버린 것은 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셈.
무엇보다 생명체가 방사능에 노출되면 신체적인 영향과 유전적인 영향을 받게된다. 그럼에도 폐기물을 마을인근에 묻은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책>
정부는 90년대에 핵폐기물 처리를 위해 저장소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무엇보다 폐기물에 대해 전문가를 통한 철저한 감시통제가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경보장치 등의 시설을 완벽하게 해 주민들의 오염피해를 막는 한편 전문지식이 없는 농민들이 핵폐기물처리에 사용된 장갑과 드럼통을 주워 재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홍보 등 예방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리=허상천·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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