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식대여액 1000조원 육박…공매도 종잣돈 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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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공매도의 핵심 수단인 주식대여액이 10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포토]

국민연금이 공매도의 핵심 수단인 주식대여액이 10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포토]

국민연금공단이 최근 4년 반 동안 1000조원에 육박하는 주식대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국민연금의 주식대여 건수는 1만6421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누적 주식대여 금액은 약 974조2830억원이었다. 국민연금은 연평균 216조5073억원의 주식대여를 통해 4년6개월 동안 총 766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이같이 국민연금의 주식대여액이 상상을 초월한 수준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연금이 공매도의 종잣돈 창구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사서 되갚는 것을 말한다. 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투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허용된 제도지만, 외국인 투자자 등의 대규모 공매도로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공매도로 주가가 떨어지면 국민연금이 기존에 보유한 주식 가치도 하락하면서 국민 노후자금이 위협받게 된다.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연금 가입자에까지 손실이 전가될 수 있는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민연금이 9%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액면분할 후 공매도 대상 종목으로 지목돼 7월 말까지 10% 넘는 주가 하락을 겪었다. 액면분할로 거래량이 늘면서 주가도 오를 것이라고 기대해 주식을 산 개인 투자자들은 고스란히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이 됐다.

이런 논란 때문에 국민연금과 달리 사학연금,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은 주식대여를 아예 하지 않는다. 일본 공적연금(GPIF),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등도 연기금의 대여 거래가 금지돼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주식대여에 대한 문제 지적에 “주식 종목당 대여 한도를 축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태규 의원은 국민연금은 대여한 주식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제대로 모니터링하지도 않아 수탁처를 통한 무제한 주식대여로 주식거래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커질 위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국민연금은 지난 5년간 1000조원에 가까운 주식대여를 통해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해치고 투기세력의 개입 가능성이 큰 공매도의 판을 키워왔다”며 “국민의 기금이 공매도에 매몰되지 않도록 국민연금의 주식대여를 금지하는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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