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派兵득실 따질 정보부터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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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의 이라크 추가파병 요청을 둘러싼 찬반 논의가 심화하는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이미 1차 파병 당시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감정적 대립을 경험했으면서도 정부가 또다시 갈등을 방임하는 듯한 인상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국민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통령의 생각처럼 국민 여론을 존중하겠다면 건전한 토론의 장을 유도할 기초자료를 제공해야 했다.

그래야 국민이 찬반 논의를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바탕 위에서 진행, 국론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고도 며칠씩이나 감춰오다 언론에 흘러나온 뒤에야 어물쩍 시인했다. 정부는 그 뒤로도 미국 정부의 요청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다.

물론 외교적 협상 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 합당하지 않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야당 지도자가 미국 정부 인사를 만나서야 미국 정부가 제시한 요구내용의 얼개를 알 수 있는 지경이 돼서야 말이 되는가.

그러다 보니 파병의 찬반 양측 모두가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채 일방적 주장만 제기해 국론을 건설적으로 통일해 나가기보다 반목과 갈등만 조장하는 방향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직도 정부는 우리가 파병했을 때와 파병하지 않았을 때의 우리 국익의 이해득실과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또 파병한다면 재정부담을 얼마나 해야 하고, 현지 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자료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현지 조사단을 다음주에야 보낸다니 정부의 불감증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부는 외교적으로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파병의 득실을 판단할 수 있는 자세한 설명부터 한 뒤 여론의 동향과 국제정세, 국익을 종합적으로 판단, 가부간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정확한 인식을 알기 위해서도 정보공개는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