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감군 선언과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 서기장이 7일 유엔 연설에서 소련 군 병력을 일방적으로 10% 감축하겠다고 한 발표는 지난 12월 미소간에 중거리 핵탄두를 전면 폐기하기로 합의한 이래 가장 뜻 있는 평화로의 진전이다. 우리는 이 제의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부터도 상응하는 조치를 유도하게되어 동서평화공존구조의 구축작업이 더욱 에스컬레이트 되기를 기대한다. 그와 같은 사태 발전은 90년대로 들어서는 세계 인류전체에 실로 오랜만에 평화시대로의 희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이번 조치는 그가 지금까지 추진해온 국내정치·경제 개혁과 대외적 평화공존정책이 진정한 의도에서 나오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그는 이 조치로서 소련 국방정책 입안권을 군부로부터 장악했음을 확인했고 동시에 지금까지 소련군이 유지해온 공격형 군사력개념을 방위형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했다.
「고르바초프」는 아시아 쪽에 배치된 극동군도「상당수」철수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조치가 실현된다면 우선 중소간의 중요한 분쟁요인이 소멸되는 것이 되며 한반도주변의 군사적 긴장상태도 크게 완화하게 될 것이다.
유럽 쪽에서는 나토군이 재래식군사력에 있어서 바르샤바군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열세에 처해있었는데 이 열세를 나토군은 전술핵무기 선사용 정책으로 보완해 왔다.
이제 소련이 동구주둔군중 상당부분을 철수해서 쌍방 군사력이 균형을 이룰 수만 있다면 전술핵무기사용의 가능성조차도 크게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고르바초프」의 과감한 조치는 소련 군부로부터 심각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고르바초프」는 군부를 자기 수중에 장악하기 위해 87년5월 국방상을 갈아치웠다. 「아흐로·메예프」소련군 참모총장은 감군 조치에 항의, 이미 사임했다.
그러나 새 국방상도 군부의 반발을 무마할 수 없었던 듯「고르바초프」의 제안이 실현될 경우 사임하겠다고 위협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와 같은 군부의 반발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에 대한 소련관료조직의 저항과 함께 앞으로「고르바초프」가 해결해야할 중대한 도전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모처럼 마련되고 있는 평화시대로의 전환이 성공해야 그 여파로 한반도의 긴장완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가 이런 도전을 극복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소련은 이미 국가관계에 있어서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외교원칙을 천명했고 이어 시베리아 개발에 한국의 참여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를 여러 번 보내왔다.
상호간에 유익할 그와 같은 관계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간의 관계가 호전되어야 하는데 그 전제조건은 남북한간에는 물론 한반도 주변에서도 군사대치상태가 해소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이번 조치는 그 자체로서는 물론 그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미소간 군축노력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궁극적으로 우리 주변은 훨씬 안전하고 평화로와 지리라는 희망을 「고르바초프」제안은 안겨준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