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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베이커, 흔들리지 않는 호밀빵 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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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호 28면

빵요정 김혜준의 빵투어: 서울 서초동 ‘장티크 베이커리’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하여 불혹(不惑)이라 했던가. 평균수명 82세에 이르는 요즘 시대라면 마흔은 그저 인생의 전환점에 다다른 하나의 점일지도 모른다.

▶장티크 베이커리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64길 50 #02-598-7600 / 10:00-22:00 / 월요일 휴무

그렇다면 제빵인에게 마흔이란 어떤 나이일까. 노동력과 기술력의 정점에 서는 지점일까, 아니면 목표를 향해 뛰는 길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일까. 서울 서초동 교대 대로변에서도 한참 안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쨍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노란 간판의 빵집 ‘장티크 베이커리’의 오너 베이커 김장환씨의 대답을 들어보자.

이제 갓 마흔에 접어든 김 베이커는 어렸을 때부터 집이 외식업을 했던 터라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스물아홉에 본격적으로 일본식 이탈리안을 배우겠다며 일본으로 떠났다. 마침 제과를 배우고 싶어 하던 친동생이 동경제과학교에 진학했다. 이를 계기로 계획에 없던 제과제빵 장르에 관해 관심이 생겼고, 결국 동생과 함께 가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같은 학교 제빵 1년짜리 과정에 입학했다.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그 뒤 동생과 함께 빵집을 내지는 않았지만, 그 호기심과 도전이 그의 인생 2막을 뒤바꾼 큰 선택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앙게트

앙게트

그가 유학을 마치고 처음 출근한 곳은 대한민국 제과제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폴레옹 과자점. 중형급 규모의 시스템에서 분업 시스템이나 선입선출의 재료 관리, 인력 관리 등의 노하우를 배웠다. 그 후 샤니 연구실을 거쳐 동경제과학교 동문들이 문 연 브레드 피트, 브레드 랩 등 ‘작은 빵집’들을 두루 섭렵해 나갔다. 제빵 불모지인 제주로 내려가서는 정승 오너셰프와 함께 보엠이라는 빵집에서 일하며 자신의 터전을 일구기 위한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버터프레첼

버터프레첼

파티시에 아내를 만난 건 가게를 오픈하는 도화선이 됐다. 결혼 뒤 바로 오픈을 준비했다. 내부 공사에만 두어 달을 매달렸다. 2016년 5월, 평생을 자란 동네에 간판을 걸었다. 서초동 상권은 연령대가 높아 새로운 도전보다는 깊이 있는 맛과 자극적이지 않은 빵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처음부터 벽돌을 한 개, 두 개 쌓아가는 마음으로 시작한 빵집. 부부가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빵 맛이 손님들의 마음을 훔쳤나 보다. 타지역에서 일부러 들르는 손님들도 생겼고, 방송에서는 달인으로 취재해가기도 했다. 특히 ‘앙데니’라는 이름의, 데니쉬 반죽 빵 안에 생크림과 팥 앙금이 채워진 제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팥빙수

팥빙수

급기야 맞은 편에 생긴 빵집에서 비슷하게 만들어내 파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분하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지만, 역시 정성과 시간만이 해답을 주었다. 원조의 맛을 지켜가는 노력을 손님들이 알아준 것이다. “단순히 어떤 특정한 아이템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 그 빵집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매일 들를 수 있는, 내가 찾는 빵이 있어 찾게 되는 곳이 동네 빵집의 의미가 아닐까요?”

호두베리 호밀빵

호두베리 호밀빵

이곳에서는 매일 자연 발효종을 키워 만들어내는 빵들의 품목만 40여 개에 이른다. 식빵류, 치아바타, 브리오슈, 바게트, 페이스트리, 브라우니 등이 그득하다. 특히 동네의 특성상 팥빙수나 커피 또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카페형 공간이 드물다 보니, 크고 작은 만남이 빵과 함께 이뤄지곤 한다.

손님도 직원도 입 모아 꼽는 추천 메뉴는 뭘까. 바로 앙게트, 호두베리 호밀빵, 바질 치즈 식빵이다. 길쭉한 모양의 앙게트는 말 그대로 바게트와 팥앙금, 버터의 만남으로 만들어졌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제품이지만, 장티크 베이커리 버전은 빵 반죽에서 차별성을 갖췄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의 두툼하고 고소한 크러스트도 좋지만 폭신하되 적당한 경도를 지닌 반죽이 이 지역 소비자들에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가며 인기를 얻고 있다.

호두베리 호밀빵은 김 베이커가 앞으로 더 많이 만들고 싶은 빵에 가까운 제품이다. 호밀 사워종을 키워 반죽을 완성하고 크랜베리와 호두를 듬뿍 넣어 새콤한 맛의 포인트와 고소한 견과류로 균형을 잡았다. 바질 치즈 식빵은 짭조름한 맛이 맥주와 어울리는 안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다 보니 인기가 많다.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굳혀가는 김 베이커의 포부는 무엇일까. 이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에 명확해지는 나이. 마흔의 그에게 미래를 물었다.

“손님이 좋아하는 식감과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빠르지는 않지만, 맛을 믿고 조금씩 본인들의 기호에서 벗어나 모험을 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 역시 그 리듬에 맞춰 조금씩 빵의 종류를 넓혀가고 싶어요. 정말 빵과 잘 어울리는 브런치도 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장티크도 저도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준비를 끝났다고 할까요?”

『작은 빵집이 맛있다』 저자. ‘김혜준컴퍼니’대표로 음식 관련 기획·이벤트·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에서 프랑스 제과를 전공했다. ‘빵요정’은 그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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