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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복지부 장관 취임 석 달 맞은 '정치인' 유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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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사람의 생각은 안 바뀐다. 차라리 사람을 바꿔라'라는 말이 있다. '장관 유시민'은 좀 달라 보인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과거의 이미지로부터 탈피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유 장관은 "한나라당의 탄핵을 물리적으로 막은 것은 잘못됐고 반성한다"고 했다. 평택 시위대에 대해선 "폭력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깡패 연기를 잘한다 해서 성격이 포악한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과거 자신이 쏟아 놓은 막말은 상황적 필요에 따랐을 뿐이라는 논리다. 인터뷰는 12일 정부 과천청사 보건복지부 장관실에서 1시간50분 동안 이뤄졌다. 그의 발언은 계산된 것이었겠지만 막힘이 없었다. 그가 "앞으로 정치를 안 하고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할 때는 "혹시 오세훈식 변신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느낌도 들었다.

-복지부 장관을 언제까지 할 건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는 2008년 2월 24일까지 하는 게 목표다. 그러면 2년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남자'라는 말이 있는데 노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떤가. 정치적 동지인가.

"지금은 부하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고 나는 대통령을 대신해서 업무를 보는 사람이다. 처음으로 상하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 그럼 과거에는 이념적 동지관계였나.

"노 대통령은 정치하는 분이고, 난 그분을 좋아하니까 일종의 컨설턴트(상담역)처럼 도와주는 관계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를 좋아하나, 아니면 정치 스타일이 좋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끌릴 때는 이유를 잘 모른다. 정치적으로 끌리는 거다. 딴 것보다도 굉장히 정의감.용기.배짱, 뭐 이런 게 있는 분이다. 난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을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는데.

"인간은 뭐가 진짜로 옳은지를 잘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게 불확실하다. 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유럽 좌파와 우파는 돌 들고, 죽봉 들고, 화염병 들고 안 싸운다. 의사당에서 멱살 잡고 저지하는 것도 없다."

-유 장관도 정치인으로서 몸싸움에 앞장서지 않았나.

"나 혼자 현실을 비켜 살 순 없다. 현실이란 게 머릿속으로 그걸 부정하고 싫어도 삶의 조건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그리로 가는 거다.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해도 자기 딸이 공부 잘해서 서울대 가겠다면 못 말린다. 이중적인 게 아니라, 사는 게 그렇다. 우리가 탄핵 때 저지했지만 나는 나중에 그게 잘못됐다고 얘기했다."

-탄핵 저지가 잘못됐다는 건가.

"물리적인 표결 저지는 문제다. 노 대통령도 괜찮으니 막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열린우리당)는 불안하니까, 숫자도 적고 하니까 막았다. 요새 한나라당도 우리에게 '너희도 탄핵 때 막았잖아'라고 한다. 한번 손해를 감수하고 어떤 정치세력이 그 고리를 끊어줘야 했다. 우리가 탄핵 때 막지 않고, 충분히 토론해서 표결했다면 가결됐든 부결됐든 우리 의회사에서 (물리적 저지는) 단절됐을 것이다. 그걸 지키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시위를 어떻게 보나. 폭력사태가 벌어지는데.

"헌법이 보장한 의사 표현 자유를 물리적으로 탄압할 때는 정당 방위 차원에서 폭력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가 평택서 미군 철수 주장하고 미군기지 반대하는 분들 집회를 불허하거나 예비 검속으로 잡아 넣지 않는다. 그런데 왜 죽봉 들고 오나. 지금은 시위대가 도발하지 않는 공권력에 대해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양상이다. 나도 옛날에 데모 많이 했다. 이제 장관이라고 해서 평택 시위대 욕하는 것 같지만, 우린 1980년대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화 집회 허용해주면 집회만 했다. 거기 줄 서 있는 경찰관들 공격하지 않았다."

-유 장관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 때문에 구속됐는데, 그때 민간인에 대해 폭력 사용하지 않았나.

"명백한 폭력이다. 내가 항소 이유서에서 썼지 않았나. 아무리 그것이 수사기관의 고문을 흉내낸 것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폭력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그건 명백하다. 말할 나위가 없다."

-평택에서 폭력 시위를 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나.

"폭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당연하지 않나. 대한민국에 합법적으로 폭력이 허용된 공간이 어디 있나. 헌법과 법률에 의해 사적 폭력은 금지돼 있다."

-노 대통령이 후계자로 만들려고 유 장관을 보냈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게 의심하면 저만 그런 게 아니다. 정동영.김근태 전 장관은 이미 장관을 했다. 천정배.정세균.이상수 장관도 현직에 있다. 저는 6~7명 중 한 명에 불과한데 두드러지게 볼 게 있는가."

-그럼 아닌가.

"그걸 따진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왜 따지는지 모르겠다. 기면(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정치적 포부가 뭔가. 장관을 마치면 뭘 하려는가.

"공익근무 마치고 집에 가는 것처럼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무현 캠프에서 자원봉사하고 국민 경선 끝나는 날 집에 돌아갔다. 또 대통령 선거 끝나는 날 집에 가는 게 소망이었다. 그러다 연장이 돼 여기까지 왔다. 2008년 2월 25일 아침에 집에서 늦잠 잘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분명히 하자. 불출마한다는 말인가. 장관 끝나면 정치 안 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게 소망이다."

-정치인 유시민은 막말을 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한데 장관이 되고 나서 달라졌다. 어떤 게 진짜 유시민이냐.

"둘 다다. 보직 변경에 따른 것이다. 당에서 내 역할은 주로 싸우는 것이었다. 지금은 행정부에 와 있다. 국회 협조를 못 받으면 입법이 안 되니까 국회의원들을 잘 모실 수밖에 없다. 옛날엔 돌격대장하면서 밤중에 총기 난사해서 민가 유리창도 깨지고 그랬다. 사령부에서 나보고 돌격대장 하라고 해서 총 들고 나가 깜깜하고 사방도 어둑어둑한데 총탄 날아오면 그쪽 방향 향해서 자동으로 놓고 갈겼다."

-과거 함부로 했던 말들을 후회하나.

"함부로가 아니다. 나름대로 충분히 계산해서 했다. 그래야 언론에서 써주지 않나. 여론전을 하는데 어필하는(먹혀드는) 발언을 해야 될 것 아닌가. 최민수씨가 깡패 역을 잘한다고 해서 성격이 포악하다고 볼 순 없는 거 아닌가."

-본인의 성품과는 상관없다는 건가.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쟤는 성격이 나빠'라고 평가해도 섭섭하거나 억울할 건 없다. 저한테 욕먹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좋은 감정을 가지겠나. 중앙일보에 대해서도 불량식품이라고 그랬는데 (중앙일보) 독자들이 기분 좋겠나. '저놈은 나쁜 놈'이라고 할 것이다. 그건 수용해야 한다. 그런데 같이 짜고 싸움했는데 내가 돌격대장을 했다면서, 성격이 나쁘다면서 우리 당 사람들이 나보고 (장관) 안 된다고 하면 억울하다."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보나.

"그건 모른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이 집권해도 상관없다고 했는데.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일정한 궤도 위에 올라와 있어 국민은 과거보다 여유 있는 입장에서 집권세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DJ(김대중 대통령) 때는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 지금은 '퍼주기 복지'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 면도 있지만 대안이 있나. 우리가 하는 많은 정책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있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어 계속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가 다 해결해 주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개인이 책임져야 할 영역은 각자 책임지게 해야 한다."

-유 장관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원칙을 세우고, 구체적인 사업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장관의 임무다. 박사라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정한 원칙은 첫째,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하고 둘째는 복지부가 그 일을 제대로 하는지 점검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효율성 극대화다."

-효율성을 강조했지만 예산부터 받아 놓자는 식의 사업이 적지 않다.

"사실 무엇을 잘못하는지 우리 스스로 모르는 것도 많다. 의료급여비 관리 부실 등도 우리가 스스로 찾아내 언론에 공개했다."

-출산율이 1.08명으로 전 세계 최저다. 대책이 있나.

"하루아침에 개선되진 않을 것이다. 아이를 나으라고만 하고 직장여성의 보육을 신경 쓰지 않는 국가나, 가사에 무관심한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출산파업 성격이 있다. 대증적인 요법으로 해결된다고 생각 안 한다."

-국민 연금 개혁을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했는데 가능한가.

"무조건 해야 한다. 야당에 대해서도 정책 세일즈를 하겠다. 야당의 정책위원회를 찾아가 정책 협의를 하겠다. 지금은 선거 때문에 안 되고, 6월은 돼야 하는데…. 야당 안(案)에도 장점이 있다. 각 당에서 이미 해법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정책위 또는 지도부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영리 의료법인을 전면 허용할 계획은 없나.

"병원들이 실제로는 영리 활동을 하는데 비영리법인으로 묶여 있어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논의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체계를 폐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논의해 봐야 실익이 없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건강보험 기본 틀을 깰 순 없다는 것이다."

정리=김영훈 기자<filich@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유시민 장관은…

1959년 경북 경주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역 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 84년 복학 후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다시 구속. 이해찬 의원 보좌관. 시사평론가.자유기고가. 재선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