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약해지자 판 흔든 트럼프…복잡해지는 북핵 포커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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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놓고 주도하지 못할 바에야 판을 뒤흔들어 버리겠다는 포커판 스타일을 구사했다. 승산이 없을 것 같은 게임은 절대 따라가지 않고 중간에서 리셋해 버리는 트럼프 스타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오후 트위터를 통해 방북 취소를 공식 발표하며 두 가지 이유를 댔다. ▶한반도 비핵화 측면에서 충분한 진전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며 ▶무역 문제에서 미국이 중국에 매우 강한 입장을 보이면서 중국이 대북 제재 이행 등에서 전처럼 비핵화 과정을 돕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이번주 중 평양에 간다고 발표한지 불과 하루 만이다.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날 오전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취소 결정에 앞서 열린 핵심 참모들과의 북한 관련 회의 관련 사진을 게시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 센터장,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전화로 합류했다 [연합뉴스]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24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날 오전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취소 결정에 앞서 열린 핵심 참모들과의 북한 관련 회의 관련 사진을 게시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 센터장,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전화로 합류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취소 통보를 하기 전인 오전 11시쯤 참모들과 관련 회의를 먼저 했다. 이 회의에서 폼페이오로부터 “지난주 판문점 협상에서 볼 때 북한이 (이번 4차 방북 때)핵시설 리스트를 건내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보고를 듣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빈 손으로 올 것 같으면 가지 마라”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결국 우크라이나 출장에서 막 워싱턴에 도착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최종 입장을 조율했다. 볼턴의 생각도 ‘취소’쪽이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직후인 오후 1시36분부터 폼페이오가 보는 앞에서 세차례의 트윗을 통해 방북 취소 사실을 공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나흘 전인 20일에도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믿는다”고 했다(로이터 인터뷰). 이랬던 그가 돌연 입장을 바꾸자 특유의 ‘변덕 전술’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북 접근법이 변화하는 징후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무역 분쟁 등 미·중 대립 구도가 북핵 접근법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선 전문가들간 이견이 적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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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이 끼어들어 북한의 조기 종전선언 요구에 힘을 실어주자 미국이 예민해졌다는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지금 미국에게 북핵 문제보다 더 큰 그림은 미·중 관계로, 여기서도 중국한테 밀리고 북핵 성적표도 초라하게 받을 경우 큰 난관을 맞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번 판을 흔들어서 중국을 저자세로 만들어놓고 북한도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워싱턴의 소식통은 “미 중간선거를 생각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은 그냥 판이 깨지지 않도록 관리만 하면 되는 사안”이라며 “표에 도움이 되는 중간선거 이슈는 미·중 간 파워게임으로 넘어왔다는 것이 워싱턴의 기류”라고 전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 [사진 중국 외교부]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 [사진 중국 외교부]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휴일인 25일(토) 오후 입장을 발표하며 반발했다. 그는 “미국의 논법은 기본 사실과 다르고 무책임하다”며 “중국은 이런 주장에 엄중히 우려하며 미국에 엄정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환구시보도 25일 ‘미국이 황당한 이유를 찾아 한반도 책임을 전가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은 미국이 일으킨 무역 전쟁에 맞서고 반격할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 한반도 비핵화를 카드로 사용할 근본적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방북을 취소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방북에도 부담이 가게 됐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북·중 관계 복원을 위한 시 주석의 방북을 막을 결정적 변수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밀리고 있는 중국으로선 방북 강행후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의식해야 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내부적으로 무역 문제에서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미국과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는 것으로 입장 정리가 되고 있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서 이렇게 강한 태도를 보이면서 오히려 종전선언 협상도 어려워질 수 있게 됐으므로 이제 북·중 간에 미국이 협상에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하는 새로운 논의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번에도 관건은 북한의 반응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취소 서한을 발표했을 당시 북한은 다음날 바로 “수뇌 상봉이 절실하다”며 이례적으로 타협적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중대한 정치 이벤트인 9·9절을 앞둔 지금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우선 미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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