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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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년들어 당정개편이 있을 때마다 인물이 없다는 말이나왔다. 이번 정부·여당개편을 앞두고도 역시 인물난 소리가 높다.
과연 그럴지 모른다. 우선 유능한 인재 다수가 과거의 정치에 오염돼 버렸다. 그 때문에 능력이나 경륜이 있다해도 참신한인물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다.
다음은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정치참여를 거부하는데 있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 정치가 맑고 명예로운 영역이 안돼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한번 정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때묻은 인사로 낙인찍히는것이 오늘의 우리 세태다.
그러나 인재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엘리트충원 메커니즘이 잘못돼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정치인 충원과정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지식이나 정치능력보다는 각종 인연에 기초를 둔 「폐쇄적 충원」이 지배적이다.
야당들의 경우도 아직 과거의 도제형 충원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보스 밑에서 수련받고 헌신해온 사람이 등용되는 중세적방식이다. 여기에 지연마저 얽혀 있다.
역대 여당의 경우도 능력 본위의「개방적 충원」 보다는 역시 직업·학교·지연에 기초를 둔 폐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5.16이래 정부·여당의 권력구조에 유동성이 적고 정치가 경직돼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의 민정당도 그 유산을 물려받아 인사에 개방성이 적다. 노태우대통령의 집권 이래 조각과 국회의원 공천,당직개편이 있을 때마다 국민들은 그 인선에 실망했다. 시대가 변하고 정부가 바뀌었어도 「그얼굴이 그 얼굴」 이었다.
노태우정부는 지금 지지기반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하다. 그것은 대통령선거에서의 투표율이나 의석의분포,여론조사의 결과에 잘 나타나있다.
정부의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것은 정국불안의 중요 요인이 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정책의 신축성과 인사의 개방성에서 찾을수 있다. 비록 재야의 주장이라도 받아들여 정책화하고 재야인사라도 끌어들여 정부를 구성하는 대담성을 보여야한다.
곧 있으리라는 정부·여당개편은 그같은 노력을 가늠해보는 시금석이라 할수 있다. 이번 당정개편은 노대통령의 정치적 취약성을 보완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위해 먼저 정부-여당 내부를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구시대의 때묻은 인물, 국민의 지탄을 받는 비리관련자,비민주적인 정치인이 남아있는한 유능하고 참신한 인물을 영입할 수는 없다.
다음은 페쇄된 벽을 넘어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이번만은 당파와 분야를 초월하여 당정개편을 단행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재야의 법조인·기업인·정치인·지식인·종교인 가운데서도 인물을 찾아내는 성의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정치적 과도기라는 지금의 시대적 성격과 여소야대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당정의 내부 쇄신과 개방적인 인재기용은 어느때 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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