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농협을 비리 온상으로 내버려둘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농협중앙회 정대근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역대 직선제 농협 회장 세 명이 모두 비리로 사법처리되는 기록을 세웠다. 농협은 자산 287조원의 국내 최대 금융기관이다. 그동안 102조원의 농업지원금을 운용했고, 앞으로 도하개발어젠다(DDA)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지원금 119조원을 관리해야 한다. 이런 농협이 부패 스캔들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농협은 그 큰 덩치로 증권.카드.보험까지 넘보면서도 정작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지 않는다. 감독기관인 농림부조차 "농협은 이제 통제 불가능할 만큼 비대해졌다"고 진단한다. 방만한 운영과 허술한 감독은 비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합장 직선제도 되짚어볼 문제다. 선거엔 돈이 들고, 당선되고 나면 '본전'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농협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사안이다. 오는 7월 국회에 제출할 농협의 신용(금융)과 경제(농산물 유통 등)사업 분리 계획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신용.경제사업을 분리해 권한을 분산시키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비대해진 권한을 감시하는 견제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정치권은 그동안 농협에 숱하게 메스를 들이댔다가 농민 표를 의식해 슬그머니 덮어두곤 했다. 이런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우리는 지난해 일부 지역의 농협 간부들이 농업지원금의 태반을 유용한 사건을 기억한다. 당시 농협은 요란스레 도덕적 해이를 반성하며 자기혁신을 다짐했다. 그러나 이제 회장까지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됐다. 농민은 뒷전이고 잿밥에 급급한 농협은 존재 이유가 없다. 농협만 제구실을 했다면 오늘 농촌 현실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