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 유해발굴 할 때 보상금을 주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예요. 미국이 북한에 특별한 거액을 줬다는 보도는 과장됐어요. 북한이 미국에 보낸 유해에서 동물 뼈가 나온 적도 없어요.”
북한 뼈 전문가 “유해 55구보다 많을 수 있다”고 해 #적혀있는 발굴일자 신빙성 없어…보관돼 있던 유해인듯 #북한, 유해 송환 협상에 적극적…곧 관련 협상 재개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인류학자 진주현(39·제니 진) 박사는 지난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미군 유해송환과 관련해 오해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계 미국인인 진 박사는 2011년부터 DPAA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유해 감식을 전담하는 ‘코리아워팀’을 이끌고 있다. 올 여름 서울과 판문점, 원산, 하와이를 오가며 유해송환 전 과정에 참여했던 진 박사와 전화로 유해송환 뒷이야기를 들었다.
- 북한이 준 유해의 상태는.
- 북한이 송환준비를 굉장히 철저히 했다. 유해함에 일일이 번호표도 붙였고, 발굴 위치 등 정보가 상세히 적힌 서류도 줬다. 다만, 북한에서 발굴했다고 적은 날짜는 신빙성이 없다. 유해 상태로 봤을 때 땅에서 바로 나온 유해는 아니고 어딘가 수습돼 있던 유해를 준 것 같다.
- 유해는 정확히 55구인가.
- DNA검사를 해봐야 안다. 북한군이 ‘뼈 전문가’라고 소개한 두 사람이 송환 현장에 나와 “집단 유해가 발견돼 유해가 혼재돼 있었다”며 “최대한 개체 분류를 했지만, 혼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어 실제론 55구가 조금 넘지 않을까싶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 최선을 다해 개체 분류를 해놨더라.
- 유품으로는 인식표(군번줄)가 하나 있었다는데 다른 유품은.
- 인식표는 1990년대에 이미 많이 보냈었고, 수통, 숟가락, 도시락, 단추, 군화 등이 왔다.
진 박사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스탠퍼드대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2010년부터 하와이에 위치한 DPAA에서 유해감식을 하고 있다.
그는 6월 19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송환이 언제 될지 모르니 가서 기다리라”는 상사의 지시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 유해가 송환된 건 7월 27일. 생각보다 늦어진 일정에 ‘무한 대기’를 하며 서울과 판문점에서 준비 작업을 했다.
- 일정이 왜 늦어졌나.
- 모른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유해를 즉각 송환한다고 합의했는데, ‘즉각’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 게 아닐까. 처음엔 판문점에서 유해가 전달될 줄 알고 판문점에다 유해함을 200개 넘게 준비해뒀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해 200구를 언급해서다. 55구가 송환된다는 건 7월 15일 장성급 회담 때 처음 들었다.
7월 12일 예정됐던 유해송환 실무협상은 북측 불참으로 불발됐다. 이를 두고 종전선언을 끌어내기 위한 북한의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당시 판문점 유엔사 교신실에서 북측과의 통화 내용을 전해 들은 진 박사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북한이 직접 전화해 유엔사가 아닌 미군과 직접 대화하고 싶다며 3일 뒤 격을 높인 장성급 회담을 제안했다”고 했다. 북한이 협상에 적극적이었다는 말이다.
- 향후 유해발굴에 대한 논의는.
- 북·미 모두 송환이 끝나면 발굴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다. 곧 관련 협상이 재개될 것 같다.
- 유해발굴 협상 주체는.
- DPAA와 국무부다. 국무부가 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유해발굴할 때 돈이 오가는 건 당연하다. DPAA가 매년 베트남에 발굴하러 갈 때도 보상금을 낸다. 남의 나라에 가서 땅을 파니 농작물도 훼손하고 사고가 날 수도 있어서다. 미국의소리(VOA) 등은 미국이 북한에 특별한 거액을 준 것처럼 보도했지만 보상금을 주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다. 언론들은 북한을 ‘동물 뼈 주고 돈 받아가는 나쁜 나라’로 묘사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북한이 미국에 보낸 유해를 전수 조사했지만 동물 뼈는 없었다.
- 이번에 금전적 논의도 했나.
- 북한이 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 앞으로 일정은.
- 9월 첫째 주까지 DNA샘플링을 마칠 계획이다. 신원확인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까지도 걸린다.
현재 임신 중인 진 박사는 “남편이 뱃속 아이를 두고 농담으로 ‘북한에 갔다 온 최초의 미국 태아’라고 했다”며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해 뿌듯했다”고 지난 송환 과정을 회고했다. 그가 꼽은 인상적인 순간은 원산에 도착했을 때다. “외가, 친가 조부모님 고향이 모두 북한이고,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6·25전쟁 때 원산에서 북한군에게 잡혀 고생하셨다고 했는데, 비로소 ‘정말 북한에 왔구나’ 싶었다”
- 원산공항은 어땠나.
- 사람이 거의 없고 비행기도 수송기 빼곤 한 대밖에 없었다. 그날 엄청 더웠는데 내부는 에어컨 덕에 시원했다. 시설은 깔끔하고 좋았지만 화장실에선 물이 샜다. 처음엔 ‘왜 판문점이 아닌 원산에서 유해를 건네주나’ 했는데, 알고 보니 원산이 북한에서 밀고 있는 지역이더라.
- 그 밖에 기억에 남는 것은.
- 원산에 갔을 때, 별 두 개 단 북측 대표가 재밌는 얘기를 했다. 유해 발굴을 하러 함경도에 다녀온 미군들이 그곳에서 먹은 감자가 맛있었다고 한 적이 있다. 이 얘기를 전하니 북측 대표가 “한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찾아보니 아이가 감자 안에 들어가서 감자를 파먹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 감자가 크고 맛있다”고 했다. 또 휴식시간에 북측에서 수박을 줬다. 미국 펜타곤에서는 회의 때 물 한 잔 주지 않는데 손님에게 먹거리를 대접하는 건 한국과 북한이 비슷하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