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조용한 '세력 확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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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최근 소리 없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중동에서 아시아.남태평양까지 여러 분쟁 지역에 병력을 파견해 입지를 넓혀 가는 중이다. 풍부한 자원과 넓은 국토에 걸맞은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는 게 목표로 보인다.

◆ 해외 파병으로 국제적 영향력 확대 노려=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는 8일 기자회견에서 현재 자국군이 활동하고 있는 이라크에 470명, 아프가니스탄에 240명의 병력을 추가로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대테러 작전을 수행 중인 190명의 자국 특수부대원을 지원하고, 이라크에서는 재건 작업에 투입된 일본 자위대원의 안전을 지키는 게 파견 목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워드 총리는 "아프가니스탄이 호주에서 먼 나라이지만 우리 후손들의 이익을 위해 병력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주는 파병 외교를 적극 활용해 남태평양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 맹주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가 주민들의 차이나타운 방화.약탈로 무정부 상태에 빠졌을 때 호주는 가장 먼저 200여 명의 군경을 현지에 급파해 치안 회복을 주도했다.

또 피지에는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병사 훈련과 무기 정비 등을 돕고 있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남태평양 10여 개국에 호주 군사 고문단이 파견돼 있을 정도다. 지난해 5월에는 라오스에서 열린 제2차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국방부 고위 관리를 보내 동아시아 안보와 대(對)테러작전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AP 등 외신은 9일 "호주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정치외교연구소인 리폼의 루버트 다르월 박사는 "하워드의 외교 노선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함께 움직이며 자국의 국제 영향력을 넓힌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그는 보수를 안고 진보와 변화를 추구하면서, 중국과 인도 같은 국제지위 상승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 하워드의 적극적인 지역 협력 외교=하워드 총리는 지난 10년간 총리직을 맡으면서 "호주가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에 안주하면 곧 도태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적극적인 국제활동으로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2004년 말 동남아에 지진해일이 몰려왔을 때 휴가 중이던 하워드 총리는 즉시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귀임해 피해국에 대한 구호대 파견과 구호품 전달을 지휘했다. 해외에 재난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휴가를 취소한 호주 총리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당시 "우방이 어려울 때 돕는 게 향후 국익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중국과는 에너지 협력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3일에는 자국 핵발전용 우라늄을 중국에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워드 총리는 이 계약에 대해 "지난 10년간의 양국 관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호주는 중국으로부터 핵기술 협력과 양국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타결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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