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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새 헌재재판관, 헌법 지식 갖춘 인물로 다양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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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다음 달 19일이면 6년 임기를 마친다. 이진성 소장과 김창종 재판관 2명의 후임은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김이수·안창호·강일원 재판관 3명의 후임은 국회가 선출한다. 대법원은 오는 16일 헌법재판관 후보 추천위 회의를 열어 후보 심사에 동의한 법조인 36명 중 3배수 이상(6명 이상)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추천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직 법관이 25명, 변호사 6명, 교수 4명, 현직 헌법연구관이 1명이다. 국회 몫 재판관에 대해선 아직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재판관 9명 중 5명 9월 교체 #30년 헌재 성격 바꿀 중대 변화 #정치 판사나 관변 학자는 곤란 #절제·진실·용기가 시대적 덕목

9명 중 5명의 교체는 헌법재판소의 구성과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변화다. 9월 1일이면 창립 30주년이 되는 헌재는 30년의 짧은 역사에도 놀라울 정도의 권위와 위상을 높여 왔다.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는 첨예한 사회·문화·경제적 갈등과 대립을 헌법의 이름으로 옳고 그름을 가려 재단함으로써 국가적 가치를 조정하고 때로는 이끌어가기도 한다. 예컨대 헌재는 동성동본(同姓同本) 혼인 금지제도와 간통죄를 폐지했고, 일찍이 문화예술계에서 일상화돼 왔던 검열을 없앴다.

지난 6월에는 특정 종교인들의 병역거부를 ‘양심’의 이름으로 승인해줬다. 심지어 헌재는 정치권 내부의 권력 갈등에도 개입해 정치지형을 변경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작년에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30년 전에 1기 헌법재판관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

이런 헌재에 어떤 헌법 철학과 사법 철학을 가진 재판관 5명이 새롭게 입성하게 될까. 세 가지 덕목을 제시해 본다.

시론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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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덕목은 절제의 미덕이다. 권한을 지고 있다고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이는 모든 법 집행기관에 요구되는 미덕이지만, 특히 헌재는 그러하다. 권한 행사의 파장과 결과가 너무나 막중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들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이른바 ‘사법귀족(司法貴族)’이다. 그러면서도 국민이 뽑은 두 정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합의해서 제시한 다수의 입법 의사(법률)를 통째로 날린다. 법률 조항을 통째로 무효로 하는 권한은 미국 연방대법원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간간이 조심스럽게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헌재는 통상적으로 휘두른다.

위헌 결정 건수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매우 높은 편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본안에서 심리한 312건 중 61건(19.5%)의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헌법불합치 포함)을 결정했다. 선출되지 않은 재판관들이 선출된 정치적 다수 의사를 깨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일까, 아니면 두려워해야 할 일일까. 지금의 헌법재판관들은 전자인 것 같다. 심지어 최근 헌재는 9명 전원이 대한민국 헌법 제16조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헌법 제정자(국민)의 의사가 잘못됐다고 재단하는 것은 헌법해석자의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국민 위에 서고 싶은 것인가.

둘째 덕목은 진실 존중의 미덕이다. 진실과 사실에 기초해서 헌법의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사실 인정이 아닌 추정에 근거해서 내린 재판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헌법재판의 특수성을 들어 항변할지 모르지만, 탄핵심판을 비롯한 모든 헌법재판의 본질은 ‘사법작용’이지 ‘정치작용’이 아니다. 법률의 위헌 심사에서도 가능한 한 객관적인 사회과학적 자료와 통계에 따라야 한다. 재판관의 상상력에 의존해 그럴 것이라는 추정된 사실에 따라서 법률의 효과를 추단해내는 논리 구성은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

특히 위헌을 선언할 때에는 추정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그런데 병역거부를 ‘양심’의 이름으로 승인해 준 결정에서, 헌재는 앞으로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해 주더라도 입법목적(병역 자원의 확보와 병역 부담의 형평성)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판단을 분명한 근거 없이 너무 쉽게 했다. 용감할지는 모르지만 무책임하다.

셋째 덕목은 용기다. 검은 것을 검다고 판단하고 흰 것을 희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을 재판관으로 선택해준 정치세력과 임명권자로부터 얄팍한 인연을 끊어낼 용기, 그때그때의 들끓는 여론에 굴복하지 않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당대의 인기가 아니라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존을 심중에 품어야 한다.

새 재판관에 정치 판사나 관변 학자는 곤란하다. 재판관 인적 구성의 다양성 측면에서 헌법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를 갖춘 인물이 요구된다. 이런 자질과 함께 위에 제시한 세 가지 덕목을 갖춘 훌륭한 재판관 5명을 곧 만나고 싶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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