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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 없이 일본 역사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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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리는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73)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원장 윤덕홍)이 초청했다. 한중연이 15~18일 주최하는 '2006 석학초청강좌'에서 네 차례 공개강연을 한다. 한일 관계사를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새롭게 성찰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야스쿠니 참배는 폭력적 역사 고쳐쓰기=고야스 교수는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등의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탈근대론은 국가중심주의를 비판한다. 고야스 교수는 일본 근대 정치사상사를 탈근대의 관점에서 재조명해왔다. 미리 배포한 원고에서 그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물론 독도 문제와 일본의 교과서 왜곡까지 두루 강도높게 비판했다.

야스쿠니.독도.역사교과서 문제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일본의 정체성 만들기'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 고유의 독자성이란 없다고 본다. 독자성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적 폭력성을 폭로하며, 관계성과 혼합성을 강조한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빼놓고 일본만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일국사(一國史)'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와 그 저변에 흐르는 일본 민족주의(내셔널리즘)를 그는 비판한다. 오늘날 '일본 민족'이라는 정체성도 100여년 간의 근대화 과정에 만들어진 현상이라 했다.

그는 "야스쿠니 문제는 아시아의 전쟁이라는 역사를 전쟁수행국인 일본의 입장에서 부당하게 일국화(一國化)하는 것"이라며 "이는 역사의 본질적인 왜곡이며 폭력적, 반윤리적 역사 고쳐 쓰기"라고 비판했다.

◆'한(韓)'과 '한(漢)' 흔적 지운 일본 근대 =고야스 류의 목소리는 일본 주류 학계에선 듣기 힘들다. 그는 "'한(韓)'의 흔적을 일본 지리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상으로도 일본 열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韓)'이란 한반도를 통해 전해진 선진 문물을 가리킨다. 그가 볼 때 근대 일본의 성립 과정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한(韓)'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이었다.

일본은'한(漢:중국 문물)'의 흔적도 제거했다. 근대 일본이 한자(漢字) 문화를 부정한 경우를 예로 들었다. 서양 문물을 번역하는 과정에 일본식 한자 조어를 대거 만들어낸 것에 대해선"'고유한 일본어'에 집착한 근대 민족주의의 소산"이라고 분석했다.

고야스 교수는 특히 서양식 근대가 싹트기 직전인 에도시대의 두 인물에 주목한다. '한(韓)'의 흔적을 강조한 후지와라 사다미키(藤原貞幹.1732~97)와 '한(韓)'의 흔적을 지우며 일본 고유의 기원을 세우는데 주력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1739~1802)다. 후지와라는 고대 일본의 제도.의례.제사.문자.의복 등의 문화가 '한(韓)'과 '한(漢)'문화에 의존한다고 봤다. 이런 후지와라의 학설을 모토오리는 "광인의 말"이라고 폄하했다. 모토오리는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한 국학자(國學者)로 20세기 전반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높이 평가받았다.

◆'제국 일본' 마인드 21세기에도 계속=일본 학계는 대개 1945년을 기점으로 일본이 전쟁에 대한 반성을 통해 군국주의와 단절했다고 본다. 하지만 고야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제국 일본'의 마인드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문제같이 동아시아의 갈등을 유발하는 사태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며 전쟁의 원인을 근대 사상의 심연에서 보다 근원적으로 파헤치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역사 공유체(共有體)로서의 동아시아'를 구상한다. 한국.중국.일본의 지역 협력보다 선행되어야 것은 '3국 시민간의 역사 공유'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야스쿠니에 모셔진 영령의 배후에 아시아 각국에서 무고하게 숨진 무수한 인민들이 있음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강연 일정 ▶15일(장소 한중연) '일본내셔널리즘의 비판적 독해'▶16일(장소 한중연) '동아시아와 한자' ▶17일(장소 서울 성균관대600주년기념관) '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재' ▶18일(한중연)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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