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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레터]두 개의 위기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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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호 면

술병에 술이 반 남아 있습니다. 낙관론자는 말합니다. “아직도 반 병이나 남았구나”. 비관론자도 말합니다. “이제 반 밖에 남지 않았구나”. 의식은 행동을 규제합니다.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고 한다면 더 마시려 할테고, 반 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만 마시고 아껴두는 쪽으로 결정할 겁니다.
 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오늘 레터는 비관론자의 심정으로 시작합니다. 두 개의 위기론 얘기입니다.

이란 테헤란을 방문 중인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8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 테헤란을 방문 중인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8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늦봄 우리를 들뜨게 했던 남북, 북미 간 ‘하트 시그널’은 폭염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차에 탈 생각이 없는 두 연인, 트럼프와 김정은 때문에 위태롭습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짜증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짜증은 상대방을 자극하는 실력행사로 긴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 이용호 외무상이 7~9일 이란을 방문했습니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비핵화 협상 파트너인 이용호의 이란행은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트럼프는 지난 5월 이란과의 핵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7월 맺었던, 이란은 핵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은 제재를 푸는 핵 합의(JCPOA)입니다. 미국과 이란은 다시 적대적 관계로 변했습니다. 그런 이란을 북한 외무상이 찾아간 겁니다. 노동신문은 “외교관계 설정 45돌”, “의례방문과 회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의례’라면서 하필 가장 고약한 시간과 상황을 택했습니다. 메시지도 고약합니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은 믿을 수 없고 신뢰가 낮은 나라”라고 공언했습니다. 이용호는 “우리는 미국과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핵화에 동의했지만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 지식을 보존하겠다”고 받았습니다.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를 방문해 2인3각으로 트럼프를 비난한 겁니다.
미국도 험악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협상론자인 폼페이오의 목소리가 잦아진 대신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흘 연속 미 언론에 등장해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5일 폭스뉴스, 6일 CNN과 PBS, 7일 폭스뉴스와 연쇄 인터뷰를 했습니다. “미국은 싱가포르 선언에 부응해왔는데 북한은 비핵화에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할 때까지 최대한의 압박을 유지하겠다”가 주요 발언입니다.
지켜보는 한국 정부는 곤혹스럽습니다. 북한에는 종전선언으로, 미국에는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라는 당근으로 다시 둘 사이를 중매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불신이 걸림돌입니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종전선언을 취해야 믿을 수 있다는 반면, 트럼프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뒷걸음 치고 있습니다. 미적대는 김정은을 믿지못하는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가 발 등의 불이다보니 골치 아픈 북한 이슈를 멀리하려는 눈치입니다.
북미 관계는 다시 '데드락(Dead lock, 교착)' 상태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중매 실력은 시험대에 들었습니다. 8월 조기 남북정상회담설이 나오고, 9월 북미 정상회담설도 청와대 주변에선 나옵니다. 성급해 보입니다. 군불을 땔 때가 아닙니다. 둘 사이의 감정부터 되살려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2000년, 2007년은 주변 국가 눈치보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2018년은 다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틀이 존재하는 만큼 남북관계만 앞서갔다간 위험하고 공허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같이 끌고가야 합니다. 시간이 더 걸릴 각오도 해야 합니다.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인사를 나누는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왼쪽). 일부 경제 현안에서는 엇박자를 내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현안간담회에서 인사를 나누는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왼쪽). 일부 경제 현안에서는 엇박자를 내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경제는 더 위태롭습니다. 실제 위기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위기라고 느끼면 위기가 현실화하는 게 경제입니다. 문제는 정부 내에서 이 위기설을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의 불화가 대표적입니다. ‘김앤장’이라는 용어처럼 한 묶음이 돼 이 정부의 경제를 이끌어온 축이 두 사람입니다. "팀워크 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한 게 1년 2개월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옛말이 됐다는 게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의 폭로는 설로만 돌던 ‘김과 장의 불화’를 온 국민이 알게 했습니다. 1년2개월 성적표만으로도 경제팀 내 분위기 전환은 필요했습니다.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의 교체는 그런 인식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5년 내내 함께 갈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 경제팀을 바꿔야 한다면, 결심을 미루는 게 더 위험해 보입니다. 규제 혁신과 일자리를 약속하는 대통령의 어깨 뒤에서 서로 다투는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면 그걸 지켜보는 불편함은 고통입니다. 출발할 때의 마음은 누구나 진실했습니다. 2017년 6월 김동연 부총리의 취임사가 그랬습니다.
“새 정부 경제부처는 한 팀으로 움직이겠습니다(중략). 우리가 언제 한번 실직(失職)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몸담은 조직이 도산할 것이라고 걱정해본 적이 있습니까? 장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이나 직원들 월급 줄 것을 걱정하는 기업인의 애로를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중략). 겸손해집시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해야 합니다. 다른 부처와 현장의 이야기도 크게 들읍시다. ‘나보다 우리가 낫다’는 말처럼, 다수 국민은 소수 엘리트보다 옳게 판단합니다(중략).”
구구절절 정답이고, 감동이었습니다. 지금은? …….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께 명상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40분 간의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오늘 목숨 바쳐서 해야할 한 가지는 뭔가. 내가 오늘 하지않아도 될 한 가지는 뭔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빠르게 살고, 경쟁하며 사는 것에 지친 현대인들이 명상 속으로 피신하고 있습니다. 중앙SUNDAY는 이번 주 스페셜리포트로 ‘명상’을 다뤘습니다. 명상에 빠진 박찬호 선수도 인터뷰했습니다. 폭염은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범상을 벗어던지고 쪽방촌을 찾아다니며 남의 폭염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스페셜리포트로 담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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