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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땅서 25년 농사 짓더니 이젠 자기 소유라 우겨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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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박정화의 부동산법률 이모저모(6)

빌려준 시골땅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아버지 지인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하자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사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빌려준 시골땅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아버지 지인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하자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사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플러스엠]

저희 집 소유 시골땅에 아버지 지인이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버지 지인이기도 했고 관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 그냥 맡겨 둔다고 생각해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용료를 딱히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농사 지은 콩류 등을 가끔 보내오면 감사히 먹고 인사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25년 정도 지났습니다.

최근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그 땅을 팔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지인에게 알리면서 집을 비워달라고 하자 그 지인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급기야 저희 땅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집을 새롭게 구해야 하는 입장은 이해를 하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요. 아버지 지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어야 하나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0년 이상 땅 사용하면 소유권 취득 가능

토지 주인 입장에서는 지인을 배려해 땅을 사용하게 해주었는데 오히려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하니 펄쩍 뛸 일입니다. 아버지 지인은 오래 지속된 관계라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믿고 스스로 비용을 들여 지은 집을 두고 나가라고 하니 당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 지인은 아무래도 억울한 자신의 입장에서 주장할 수 있는 법률적인 근거를 찾아보았을 텐데요. 지인 주장의 법률적 근거는 바로 점유취득시효 일일 것으로 보입니다.

점유취득시효상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발생의 요건. [제작 김예리]

점유취득시효상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발생의 요건. [제작 김예리]

점유취득시효는 우리나라 법제에서 소유권을 취득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 골자는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게 되면 등기상의 소유권자에게 등기청구를 해 등기가 이루어지면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년이 넘게 땅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하니 무슨 요술방망이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민법 제245조에서 이러한 내용의 점유취득시효를 정하는데, 그 취지는 일정한 기간동안 계속된 사실관계를 권리관계로 인정해 기존의 법질서대로 안정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 명언에 기초한 것이기도 합니다. ‘권리 위에 잠을 자면’ 땅까지도 빼앗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서운 법 명언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과거에 많은 사람이 위 법 조항에 따라 부동산을 취득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위 조항에서는 20년만 정한 것이 아니라 다른 요건들도 정하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보아야 하는데요. 바로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지인이 점유취득시효의 요건들을 충족했다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으니, 요건의 충족 여부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먼저 지인이 과연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던 것인지 살펴야 할 것인데요. 우리나라 법제에서 부동산은 크게는 땅과 건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 땅에 대한 소유권이 문제이지 집에 대한 소유권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지인은 자비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그 집 건물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이라는 건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집이 서 있는 부지 땅을 ‘점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집의 부지인 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인은 자비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 건물을 소유하고 있고 부지 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지인은 자비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 건물을 소유하고 있고 부지 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포토]

또한 땅 주인은 본인 땅 위에 지인이 집을 짓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리 등의 이유로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었는데요. 여기에서 두 번째 점유취득시효의 요건인 평온하고도 공연한 점유가 인정될 여지가 상당합니다.

대법원의 판례에 의하면 ‘평온한 점유란 점유자가 그 점유를 취득 또는 보유하는 데 법률상 용인될 수 없는 강폭행위를 쓰지 아니하는 점유이고, 공연한 점유란 은비의 점유가 아닌 점유’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지인은 과연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이라고 법률상 볼 수 있을까요.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다는 것을 법률적으로는 ‘자주점유’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자주점유의 반대는 타주점유입니다.

일단 원칙적으로 민법 제197조 제1항에 따라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송을 한다면 점유자에 대응하는 소유자가 오히려 타주점유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도대체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다는 것, 자주점유는 무얼 말하는 것일까요.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타인의 소유권을 배제하여 자기의 소유물처럼 배타적 지배를 행사하는 의사’를 말한다고 합니다. 판례의 문구 표현대로라면 점유자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그 땅을 소유하려는 의사에서 점유를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법 제197조의 자주점유 추정의 법 규정과 위 판례의 자주점유 정의로 인해 과거에는 남의 땅 위에 특별한 이유 없이 집을 짓고 살다가 20년이 흐른 뒤에 땅 주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고 해서 실제로 소유권을 취득한 일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권리 위서 잠 자는 사람 보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매됐거나 증여된 땅이 등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점유를 시작했다면 그 점유는 자주점유가 되지만, 임차나 사용대차를 통해 점유하기 시작했다면 타주점유가 된다. [중앙포토]

매매됐거나 증여된 땅이 등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점유를 시작했다면 그 점유는 자주점유가 되지만, 임차나 사용대차를 통해 점유하기 시작했다면 타주점유가 된다. [중앙포토]

그런데 아무리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단으로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사는데도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사회적 반감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이후 태도를 변경하였는데요. ‘자주점유인지 타주점유인지의 여부는 점유자의 의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점유취득의 원인이 된 권원의 성질이나 점유와 관계가 있는 모든 사정에 의해 외형적, 객관적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만약 매매됐거나 증여된 땅이 등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점유를 시작했다면 그 점유는 자주점유가 됩니다. 하지만 임차나 사용대차를 통해 점유하기 시작했다면 임차나 사용대차 자체가 원래 남의 땅을 빌려 쓰는 형태이므로 타주점유가 되는 것입니다.

민법상 사용대차라면 소유권은 땅 주인에게

사례에서는 땅 주인의 입장에서 본 사실관계인데, 민법상 사용대차로 볼 여지가 많을 것 같습니다. 민법상 사용대차는 무상으로 부동산이나 물건 등을 빌려주고 약속한 기간이 지나면 반환받는 법률관계이므로 타주점유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땅 주인은 아버지의 지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집을 철거하고 나가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러 점유자가 처음 점유를 시작할 당시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혹시 아버지가 그 지인에게 증여한다는 약속을 했거나 이미 매매를 했다면 소유권을 이전해 주어야 할 지도 모르니, 아버지 지인이 처음 점유 시작할 당시의 자료 등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지인이 제시하는 계약서가 있다면 그 계약서의 진위여부도 다시 한번 꼼꼼히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박정화 변호사 lawminpj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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