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를 넘은 대출경쟁을 걱정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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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판교 신도시의 중도금 대출금리가 연 4.66%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인건비를 감안하면 출혈 대출이나 다름없다. 현재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특판예금 금리가 4.4~4.8%인 상황에서 역마진 가능성도 다분하다. 일부는 승자의 재앙까지 우려할 정도다. 물론 과당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나 상환 리스크는 일차적으로 은행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어느새 국내 금융시장은 완벽하게 변모했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자금을 수요하는 쪽은 기업이며, 가계는 자금 공급자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주택담보 대출을 포함한 가계 대출 잔액은 이미 기업 대출 잔액을 앞질렀다. 현금이 넉넉한 대기업들이 거꾸로 자금 공급자로 둔갑했다. 이런 구도에선 저금리가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보다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게 마련이다.

출혈 대출에 대해 은행들도 나름대로 항변하고 있다. 우선 대출을 일으킬 곳이 마땅찮다. 또 '판교 로또'라는 말처럼 이미 판교 당첨자는 상당한 시세 차익을 내고 있다. 은행으로선 가장 안전한 대출인 셈이다. 정부가 눈에 쌍심지를 켜지만 부동산으로 향한 돈줄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가 푼 토지보상비는 18조원, 올해도 토지보상금은 줄잡아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자금들이 어디로 갈까. 요즘 서울 강남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보면 아파트 '실수요자'의 절반은 특정 지역 사투리를 쓴다고 한다.

그나마 집값 고공행진으로 최근 가계 대출 연체율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과당 경쟁은 신용카드 위기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연착륙을 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설 적기다. 지난주 한국은행도 '가계발(發)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주택담보 대출이 폭증한 데다 가계 대출의 86%가 변동금리여서 집값이 급락하거나 금리가 치솟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연착륙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과거를 돌아봐도 금융기관의 출혈경쟁과 부동산 거품이 남긴 후유증은 엄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