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첫 단속 가보니 … “손님 몰리는 아침·점심 시간대 단속은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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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을 단속하도록 했다. 환경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날부터 일제히 단속을 시작했다. 약 3개월 간의 계도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불시 단속’이 원칙이다.

2일부터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과태료 부과 #서울시와 종로구, 미리 알려주고 ‘예고 단속’

서울시는 이날 오후 4시 40분쯤 종로구청 단속반과 함께 종로구의 카페 두 곳을 단속했다. 하지만 이날 단속은 카페에 단속반의 등장을 미리 알려준 후 이뤄졌다. 서울시는 “오늘 하루 몇 시간만에 취재에 협조해 줄 카페를 섭외하기 힘들었다”는 이유를 댔다.

자치구는 카페 안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고객이 있으면 규모·이용객 수 등을 감안해 해당 매장에 5만~2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려야한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2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단속에 나섰지만, 카페에 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나선 '연출된 단속'이었다.[ 사진 뉴스 1]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2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단속에 나섰지만, 카페에 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나선 '연출된 단속'이었다.[ 사진 뉴스 1]

‘단속 예고’를 받은 종로구 H 카페 안에선 손님 3명 모두 유리잔(머그잔)에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단속반은 매장을 휙 둘러보며 유리잔과 컵 회수대 비치 여부를 확인했다. 그 후 점원과 면담했다. “카페 가 보유한 유리잔은 몇 개 인가요?”(종로구청 직원) “120개 정도 됩니다.”(점장) …. 이어 단속반은 점장에게 “손님에게 매장 안 유리잔 사용은 잘 안내해주고 있는지” 등을 물은 후 지도·점검표를 작성했다. 이 카페의 점장은 “점차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쓰겠다’고 고집부리는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일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단속에 나선 서울시는 기자들이 모인 후에에 "카페에 단속 사실을 미리 알려줬다"고 말했다.[ 사진 뉴스 1]

2일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단속에 나선 서울시는 기자들이 모인 후에에 "카페에 단속 사실을 미리 알려줬다"고 말했다.[ 사진 뉴스 1]

역시 단속반의 등장을 미리 안 T 카페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손님 20여 명 모두 유리잔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카페의 점장은 “매장에서 회수되는 일회용 컵이 과거 100개 정도였지만 어제는 20개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단속 방식의 한계는 있었다. 종로구에만 카페는 1000여 개가 있다. 종로구청은 매일 직원 10명이 2인 1조를 이뤄 단속을 벌일 계획이다. 하지만 단속반 관계자는 “손님이 몰리는 아침과 점심 시간대는 단속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단속반 인원이 적고, 손님들이 꺼려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속보다는 계도에 중점을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종로구청 직원이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카페에 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나선 '짜고 친 단속'이었다.[ 사진 뉴스 1]

2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종로구청 직원이 카페 안 일회용 컵 사용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카페에 이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나선 '짜고 친 단속'이었다.[ 사진 뉴스 1]

물론 단속에 현실적은 어려움은 있다. 카페 업주들의 하소연을 외면하기 어렵기도 하다. 업주들은 “유리잔을 권해도 손님들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날 단속 대상이 된 카페의 점장 역시 “점심 시간에만 손님 150명이 찾아오는데, 설거지할 틈이 없어서 머그잔 개수를 이전보다 두 배(120개)늘린 것”이라고 토로했다.

카페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해 환경부와 지자체는 실적 위주의 과태료 부과 조치는 자제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점원이 소비자에게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이 안 된다는 사실을 고지했는지, 소비자가 테이크아웃 의사 표명을 분명히 했는지 여부를 확인한 뒤 과태료 부과 여부를 결정해 업주가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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