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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무] 똥, 누면 시원하고 보면 즐겁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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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 속담에 '신발 속에 똥을 넣고 다니나, 키도 잘 큰다'는 말이 있다. 한창 자라는 아이에게 던지는 덕담이다. 똥을 감나무 밑동에 묻으면 잎이 텁텁한 색깔로 바뀌면서 감이 주렁주렁 잘 영근다. 그러니 똥 담은 신발을 신으면 아이가 그만큼 튼실하게 자랄 것이라는 재치 있는 비유다.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똥은 더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밭일을 하다가도 뒤가 마려우면 헐레벌떡 집에 가 똥을 누고 나갔다. 내 똥을 헛되이 버리지 않고 내 집 안에 잘 챙겨두기 위해서였다.

아장아장 걷는 서너 살 배기부터 예닐곱 살 어린이까지 맘에 드는 책을 골라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똥이야기가 들어간 이른바 '똥그림책'을 집는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로 똥의 세계에 입문한 어린이들은 '똥이 풍덩'(알로나 프랑켈 지음, 비룡소), '밤똥참기'(이춘희 글, 심은숙 그림, 언어세상)과 함께 배변 훈련을 하고, '누구나 눈다'(고미 타로 글.그림, 한림출판사)를 읽으며 각양각색의 똥을 그리는 데 탐닉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강아지똥'(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을 선물 받고 똥의 설움에 함께 눈물지으며 마음의 키를 키운다.

아이들은 왜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독일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유아기의 어린이들은 이른바 '항문기'로서 배설의 기쁨을 이해하고 배설과 관련된 행위를 즐긴다고 한다. 그들이 똥과 만나고 똥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신적 성숙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린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믿고 똥에 관한 동화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경향이 있다. 똥이 서사의 중심에 있지 않은 데도 일부러 '똥'을 강조한 제목을 지어서 어린이들의 눈길만 잡아두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연이어 출간된 '똥'과 '방귀'에 대한 몇 편의 책은 '똥'의 재미와 더불어 굵직한 이야기의 힘까지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똥장군'(김정희 글.그림, 한림출판사)은 똥지게 지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는 영재의 이야기다. 영재네 식구에게 똥 푸는 일은 소중한 밥줄이지만 영재는 왜 하필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일을 해야 하는 지 속상할 따름이다. 특히 짓궂은 병호는 앞장서서 영재를 놀린다. 하지만 큰 비가 지나가고 병호네 집 마당에 똥물이 넘치면서 영재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가 한 명 더 늘게 된다. 똥의 소중함을 크게 외치지 않지만 똥도, 똥을 다루는 직업도, 똥 냄새 나는 친구도 모두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탄탄한 그림책이다.

'아니, 방귀 뽕나무'(김은영 글, 정성화 그림, 사계절)는 말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는 '뽕' '뿌웅''질펀한' 같은 낱말이 얼마나 멋진 시어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유쾌한 동시집이다. 변비에 걸려 헛방귀만 푹푹 뀌는 기분, 남은 오줌이 바지에 찔끔 묻었을 때의 찜찜함, '구린내 나는 똥구슬'인 은행알이 후두둑 떨어지는 날의 강렬한 후각적 경험까지 마치 '내 똥 얘기'를 하는 것처럼 친근하다. 그밖에 '방귀 대장 버티 네가 뀐 거니?'(데이비드 로버츠 글, 미디어2.0)에는 방귀의 책임을 피하려는 점잖은 어른들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다. '긴급출동! 춤추는 악어, 알베르토를 찾아라'(리처드 워링 글, 중앙출판사)는 실수로 변기에 빠진 악어가 하수관을 통해 세상을 떠돌며 변기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색다른 모험담이다.

'똥'이라고 하면 눈살부터 찌푸리기 일쑤인 어른들로서는 소리 내어 읽기도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그러기에 알려드리는 비법 한 가지. 평소에 근엄하기 짝이 없던 '리모콘 박사' 아버지가 가정의 달을 맞아 생생한 의성어를 발음하며 신나는 똥 얘기를 읽어줘보자. 똥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닌 우리 아이들이 똥 냄새보다 몇 배 더 진한 아빠의 정을 담뿍 느끼지 않을까.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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