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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숨이 멎을 것 같은데”...'동두천 딸'에게 보내는 눈물의 손편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7일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서 숨진 A양과 그의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남인천고 학생들. [사진 남인천고]

지난 17일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서 숨진 A양과 그의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남인천고 학생들. [사진 남인천고]

“생각만 해도 숨이 멎을 것 같은데…. 잘 이겨냈으면, 잘 버텼으면 좋겠습니다.”

인천시 미추홀구 남인천고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영란(62·여)씨가 지난 17일 경기도 동두천의 한 어린이집 통학 차량 안에서 숨진 A양(4)의 엄마에게 쓴 편지 내용 중 일부다. 김씨는 “처음에 편지를 쓰자는 교사의 제안에 가슴이 먹먹하고 뭐라 쓸 수 있는 말이 없었다”며 “무슨 말로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생각됐지만 내 딸이라고 생각해 편지를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도 5살 쌍둥이 외손녀 둘을 키우고 있는 터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남인천고는 정부에서 인정한 고교 과정의 평생교육기관으로 2년 6학기제다.

남인천고 학생들이 작성한 편지 내용. [사진 남인천고]

남인천고 학생들이 작성한 편지 내용. [사진 남인천고]

늦깎이 여고생들,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편지 쓰기는 김씨 외에 이 학교 1학년 1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할머니이자, 친정엄마의 마음을 담아 썼다고 했다. 김씨를 비롯해 이 학교 1학년 학생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려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가 뒤늦게 공부를 하는 60~70대 늦깎이 주부들이다.

편지는 지난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작성됐다. 이 학교 평생교육부장 이지현 교사의 협조를 받아 24일 오전 편지를 쓰는 학생들을 복도에서 볼 수 있었다. 편지지를 꺼내 든 여고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편지를 써 내려 갔다. 편지를 쓰다 눈물을 닦는 학생, 창문 밖 하늘만 쳐다보는 학생, 고개를 숙인 채 편지지만 쳐다보는 학생 등 쉽게 글을 써 내려 가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손녀, 딸에게 쓰는 편지였지만 그들은 할머니이자, 친정엄마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동두천

숨진 A양에게 미안한 마음을 적은 편지. [사진 남인천고]

숨진 A양에게 미안한 마음을 적은 편지. [사진 남인천고]

손편지, 30일 오후 A양 가족들에게 전달 

편지 내용은 허망하게 떠나 보낸 A양에 대한 미안함과 조금이나마 위로하고픈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내용은 학교 측에서 익명으로 공개해 줬다.

한 주부는 “자녀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황망해 하고 있을 어머니께 감히 펜을 들어 봅니다”라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이 시간 자녀를 가슴에 품고 계심을 알기에 그 어떤 말과 글이 위로가 될까요”라며 “그래도 작게나마 손글씨로 그 아픔에 함께 해보려 합니다. 힘을 내세요”라고 했다.

A양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주부. [사진 남인천고]

A양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주부. [사진 남인천고]

또 다른 주부는 숨진 A양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사랑하는 아가야 정말 미안해, 어른들의 실수로 소중한 우리 아가를 하늘나라로 보내게 됐다”며 “수천 번 말을 해도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구나, 괴로움과 고통이 없는 천국에서 편안히 쉬길…”이라고 적었다.

이들이 작성한 편지는 지난 25일 손편지쓰기운동본부 이근호 대표에게 전달됐다. 이 대표는 30일 오후 A양의 부모에게 전달한다. 이 대표는 “아이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워 학교 측에 손편지 쓰기를 제안했는데 윤국진 교장께서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며 “친정엄마, 할머니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받은 가족들이 적게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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