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옛 명창소리 재현|순수음악동호인모임「신악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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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작고한 명창들이 남긴 희귀한 유성기음반들을 수집·정리해서 음반과 해설집을 만든 음악동호인모임이 있어 눈길을 모은다. 조선시대에 태어나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활약한 송만중·이동백·여창룡·정정렬·김창환 등 명창들의 소리를 담아 최근『판소리 5명창』을 출반한 신악우회.
구전에 의한 판소리 전승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최고의 녹음이 자칫 완전히 변질 내지 소멸되기 전에 판소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으로 명인 명창선집을 기획한 것이다.
『우리 국악은 정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민속악이 구전으로만 이어왔기 때문에 악보가 없는 민속악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고 음반은 막중한 문헌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식민지시대와 서구화 물결 속에서 국악이 점점 제 모습을 잃어 가는데도 5천여종에 이르는 소중한 고 음반들이 그냥 방치돼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와서 뜻 있는 회원들이 발벗고 나섰지요.』
회원인 배연형씨(휘경여중 교사)는 SP판들을 수집하기 위해 고물상까지 뒤지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이토록 홀대받는 현실을 새삼 통감했다고 말한다. 여기저기「함부로 처박혀 있는」음반들을 어렵사리 찾아내더라도 그 음질상태가 대체로 나쁘기 때문에 사설을 채록해서 주석을 달아 해설집을 만드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고. 그러나 전대의 판소리를 고스란히 계승하여 정통 가법 최후의 보루가 된 명창들의 예술 혼이 짙게 배어있는『춘향가』『심청가』등을 되살려내는 즐거움 때문에『역시 뜻깊은 일』이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작업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각자 생업을 가진 회원들이 틈틈이 만나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역작이긴 하지만 1910∼1930년대의 유성기음반을 복각했으므로『판소리 5명창』음반에 잡음이 많은 것을 신악우회 회원들은 몹시 안타까와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이화중선·임방울 등 명창들의 판소리를 모아 명인 명창 선집을 계속 선보일 계획.
제1집으로 나온『판소리 5명창』을 국악 및 판소리 연주자와 관련학자, 국악 관련단체, 각 대학 국악과 등 1백여 곳에 무료 기증하자『마땅히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해야할 일들을 대신 해냈다니 장하고도 미안하다』고 입을 모았다며 자랑스러워한다. 국악은 우리 것이니까 무작정 사랑하자는게 아니라 예술성이 높으니 제대로 되살려 발전시키고 즐겨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신악우회 회원들은 각 명창들의 전집을 포함한 명인명창선집을 최소한 약30집까지 만들어 국악의 기본적인 맥을 이어보겠다고 다짐한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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