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예비율 2년 만에 7%대로 급락…이례적 폭염이 불러온 나비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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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예비율이 7%대로 떨어졌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4일 오후 2시 15분 기준 전력 수요는 9175만㎾를 기록했다. 공급 능력(9894만㎾)의 7.84% 수준이다. 예비율이 7%대로 떨어진 건 2016년 8월 8일 이후 2년 만이다. 보통 예비율이 10% 이상이면 수급이 안정적인 것으로 본다. 정부는 아직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6년 전 대정전 사태가 또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며 전력 수요량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전력공사 남서울지역본부 전력사업처 사무실에 설치된 전력수급현황 모니터에 전력예비율이 한자리 대로 표시되고 있다. 2018.7.24/뉴스1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며 전력 수요량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전력공사 남서울지역본부 전력사업처 사무실에 설치된 전력수급현황 모니터에 전력예비율이 한자리 대로 표시되고 있다. 2018.7.24/뉴스1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하루 중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한 시간 동안의 평균 전력 수요)를 8750만㎾로 전망했다. 발표 당시 정부가 탈원전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너무 낮게 전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일 발표한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에선 8830만㎾로 수정했다. 그러나 23일 최대 전력은 사상 처음으로 9000만㎾를 돌파했고, 24일엔 9248만㎾로 또 한 번 기록을 깼다.

정부가 예측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날씨다. 산업부는 ‘6월과 8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고, 7월은 비슷할 것’이란 기상청의 예보를 참고해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을 만들었다. 그런데 올 7월엔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1994년 여름 이후, 가장 극심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마가 예상보다 빨리 끝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부 관계자는 “장기적인 전력 수요는 경제성장률(GDP)과 전력 가격, 인구·기후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지만, 당장 다음 한두 달을 예상할 땐 다른 변수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날씨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부정확한 수요 예측 때문에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2011년 9.15 대정전 같은 일이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수요가 몰리는 여름철이 끝났다고 보고 공급 능력을 7000만㎾ 수준까지 낮췄다. 하지만 9월 낮 기온이 한여름 날씨인 32도까지 치솟자 전력 수요가 급등하면서 갑자기 예비력이 334만㎾로 급락했고, 순환 정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예측에 실패한 건 지적할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최악을 가정해 수요를 너무 높게 계산하는 것도 문제다. 1년에 몇 번 정점을 찍는 최대 전력수요에 초점을 맞춰 발전소를 과도하게 짓는 건 경제적이지 않아서다. 예컨대 폭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3일 예비율은 8%였지만 같은 월요일인 9일엔 34%에 달했다. 당일 최대 전력수요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설비가 멈춰있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는 발전소를 더 짓는 대신 수요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게 수요감축요청(DR)이다. 기업이 전기 사용을 줄이면 정부가 보상해 주는 제도다. 현재 DR에 참여 중인 기업이 요청에 응하면 최대 400만㎾의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지난해 여름에도 두 차례 DR을 발령했다. 올해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발령하진 않았다. DR을 발령해도 실제 수요 감축 규모는 50만㎾ 정도인 데다 탈원전에 따른 전력 부족을 기업에 전가한다는 지적도 부담스러운 눈치다.

결국 대통령이 나섰다.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산업부가 전체적인 전력 수급 계획과 전망, 대책에 대해서 소상히 국민들께 밝혀드리라”고 말했다. 원전 가동 상황을 왜곡하는 주장에 대한 대응도 지시했다. 최근 탈원전 때문에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취지의 보도가 연이어 나온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20180724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20180724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공급 확대를 위해 원전 가동을 인위적으로 늘렸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22일 “현재 정지 중인 한빛 3호기와 한울 2호기를 전력 피크 기간(8월 2주∼3주) 이전에 재가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5월11일 정비를 시작한 한빛 3호기는 당초 8월9일 정비를 끝낼 계획이었다. 한울 2호기 역시 문제가 발견돼 갑자기 정지했다가 복구작업을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간 경우다.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의 계획 예방정비 착수 시기도 지난 4월에 이미 전력 피크 기간 이후로 조정해 뒀다. 원래 있던 계획을 설명한 것뿐 정비 기간을 억지로 앞당기거나 뒤바꾼 건 아니라는 뜻이다.<중앙일보 7월 23일 A2면>

탈원전은 지금 당장 원전 가동을 중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24기인 원전 숫자는 현 정부 내에서 27기로 늘어난다. 현 정부에서 사라지는 원전은 월성 1호기뿐이다.

다만 폭염에 따른 수급 문제가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전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에너지 전환 정책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제대로 공론화 없이 결정해버린 측면도 있다”며 “기후 변화와 미세먼지,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한 변수를 검토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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