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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교도관 "우리는 제2의 죄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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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재소자들을 이감하거나 호송할 때가 오히려 저희들에겐 휴식시간입니다.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교도관생활 4년째인 김 모씨(31)는 24시간씩의 격일 제 근무가 결국 재소자들의 집단탈주라는 엄청난 사건을 몰고 왔다고 말했다.
전국의 교정 공무원은 현재 8천5백여 명에 이르지만 이중 사무직을 제외하고 실제로 재소자들의 감시·호송업무 등을 담당하는 보안과 소속 직원은 5천6백12명.
36개 일선 구치소와 교도소 등에 수용중인 전체 재소자가 5만3천여명 임을 감안하면 이들 교도관들은 1인당 9∼10명씩의 재소자를 맡아야하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교도관 1인당 맡고있는 재소자가 3·4명, 영국 2·3명, 호주 2명, 일본 3·6명인 것에 비하면 3∼4배나 된다.
교도관들은 오전9시 출근, 다음날 오전9시까지가 근무시간이지만 점검·지시사항 전달 등 인수인계 때문에 오전 10시쯤 돼서야 퇴근할 수 있고 출정 등 호송업무가 많은 날은 오후3시까지도 「비번근무」를 해야한다.
이 같은 근무여건 때문에 교도관들은 자신들을 「제2의 죄수」라고 자기비하까지 하는 실정이다.
법무부 고위간부는 『이 같은 교도관들의 업무과중을 해소, 충실한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하루 3교대제의 근무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앞으로 4년 간 연차적으로 매년 5백 명씩 모두 2천여 명의 교도관을 증원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 이라고 밝혔다.
이 간부는 『이 같은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에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며 교도관중 90%가량이 8∼9급의 하위 직인 것 역시 이직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지난 5월 춘천교도소에 수감중인 재소자들이 소 내 처우개선과 함께 『영치금 갈취하는 교도관을 색출,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재소자들의 영치금 시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진상은 대부분 수사의 사각지대에 묻히고 말았다.
절도 등 전과3범인 황 모씨(35)는『교도소 내에서 돈으로 구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여자」뿐이란 말이 있다』며 『최근엔 많이 좋아졌다고 듣고 있지만 특히 영치금 관리제도가 개선돼야한다』고 말했다.
재소자들에 대한 인권유린행위 역시 민주교정제도의 정착을 위해 반드시 근절돼야 할 과제다.
이번에 탈주했다 자수한 김동련(31)은 자수직전 작성한 유서에서 「비녀 꽂기」 등 교도소내의 가혹행위를 폭로했고 지난 15일 청송보호감호소에선 유 모씨(30)가 현장 감사 온 의원들에게 자신이 교도관들에 의해 지하실로 끌려가 집단구타와 물 고문 등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교도소 내에서의 가혹행위 등 빈번한 인권유린시비는 지나친 징벌규정에도 그 원인이 있다』며 『수감생활 자체가 엄청난 징벌인 만큼 이번 기회에 징벌규정도 합리적으로 개선돼야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또 『과거엔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수감자에게 보다 많은 고통을 주어야하는 것으로 인식됐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교정과 교화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지적, 『다리도 제대로 필 수 없는 수용시설은 과감히 개선돼야하며 사회복지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도 신문·서적 등 외부정보에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탈주사건에서 드러났지만 호송버스의 구조개선도 시급하다.
운전석과 재소자들 좌석이 차단 돼 있지 않아 쉽게 버스를 탈취 당하고 말았다.
이와 함께 고성능 금속탐지기나 CC-TV(폐쇄회로 TV) 등 과학적인 교정장비의 도입이 필요하다.
영등포교도소 탈주 주범들이 운동장과 사방 등에서 구한 쇠붙이를 화장실 바닥에 갈아 수감열쇠 및 쇠꼬챙이를 만들었는데도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고 이감 때 이를 탐지하지 못한 것 등이 이번 탈주사건을 빚게 했기 때문이다.
또 재소자들이 자주 가는 곳이나 사방 등에 CC-TV를 설치, 수시로 감시할 수 있어야 하며 공항 등에서 쓰이는 정밀금속 탐지기가 도입돼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적 개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재소자들이나 출소자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
법무부 교정국장을 역임한 김동철씨(현 부산고검장)는 『교정기행』이란 수상록에서 『형사사법제도는 경찰·검찰·재판·교정·갱생보호 등 5개 분야로 나눌 수 있으나 경찰·검찰·재판업무는 국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련되어 국민의 인식이 높은 반면 교정부문은 관심의 희박 내지 몰이해로 인식이 낮다』고 지적했다.
사회의 관심부족이 결국 교정행정의 낙후성을 초래했다는 진단이다.
『너무들 전과자라 색안경 끼고 보지 마시고 따뜻하게 다시 보아주세요. 사회가 저주스럽습니다.』
탈주범 김동련이 자수 전 쓴 유서를 통해 호소한 이 말은 사회 전체가 참여해야 할 교정을 우리가 얼마나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리는가를 단적으로 꼬집고 있는 것이다.

<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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