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續 - 너희가 병영을 아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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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달 27일 나간 칼럼에 대한 반향이 상당했다. 많은 독자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젊은 날을 요령으로 살고 적당주의로 대처하도록 유도하는 군대 문화가 오늘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자신의 군 복무 시절 경험을 e-메일로 보내온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군의 극한 생활을 통해 '대한의 사나이'로 다시 태어났고 그것을 힘든 삶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는 요지였다. 어느 장교는 "군대는 보이스카우트가 아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군인이 좀 맞고 모욕당했다고 자살하거나 탈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 안보를 걱정한다"는 내용으로 e-메일을 보내왔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병영의 지난 날을 '그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주하거나 지금까지 타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오늘의 우리 병영에 문제의 소지를 남긴다고 돌려 말할 수는 없을까.

그 장교의 e-메일에서 "사병을 사람이 아닌 보급품처럼 취급하는 장성과 장교 밑에서 사병의 개혁은 공염불이 될 게 뻔하다. 장군과 장교에 대한 개혁이 절실하다"는 대목을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때마침 병영에서 장성과 장교들의 사건.사고가 터져나왔다. 이달 들어 해군경비정에 근무 중이던 중위가 한 대위의 발길질에 하반신이 마비됐고 경기도 어느 합동검문소의 초소장인 소위가 권총 자살했다. 이어 군 장성이 포함된 외부지원금 횡령 사건과 전 국방장관에 대한 수뢰 조사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급한 대로 장교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외관상의 군기가 전투력으로 직결된다고 믿는가. 현대전은 예전 재래식 무기로 싸울 때와는 달리 유연한 병사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칼럼에서 '자유의 바람'을 얘기한 것은 그 열린 내무반에서 쌓은 상상력으로 새로운 강군(强軍)의 논리를 만들고 싶어서다."

'육군 병장'이 군 경력의 전부인 주제에 장성은커녕 장교들의 세계조차 얘기할 입장은 아닌 듯하다. 다만 명문대 출신 사병이 장성이나 고급 장교의 집에서 자녀의 과외교사로 복무를 대신하고 김장을 담그는 데 필요한 배추와 양념까지 사병용에서 갖다 쓰는 일이 지금은 근절되고 없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병영이라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의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은가.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 전방에서 대규모 작전을 펼칠 때면 으레 대대장이나 연대장이 연단에 올라 "민간의 수박.참외 등 농작물은 물론 깻잎 하나까지도 손대지 마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주인이 밤을 새워 지켜도 병력이 지나간 밭은 폐허이기 일쑤다. 지휘부의 도덕.윤리 불감증이 병사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탓이다.

이제 병영의 낡은 바람을 거둘 시점인 것 같다. 이번 주말 미 8군 영내를 들어가 보라. 운동복 차림으로 군장을 지고 달리는 미군을 만날 수 있다. 쉬는 날 스스로 훈련하는, 바로 그것이 진정한 전투력이고 나라 사랑 아닐까. 오늘 우리 군이 어디로 가야 할지 담론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지난 번에 이어 다시 사족 하나를 달자. 정녕 병영의 기강을 바로잡을 요량이면 지휘관에 대한 연대 문책을 금할 필요가 있다. 선임하사가 탈영병의 집을 찾아가 '부대로 돌아가자'고 사정하고, 병영의 각종 사고를 대충 덮고 지나가는 것은 중대장.대대장 등에게 돌아갈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다. 오히려 엄중하게 처리하는 지휘관에게 혜택을 주면 재발 방지에 효과적일 터이다.

허의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