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희귀질환 고셔병, 조기 진료 시 정상적인 생활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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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아주대 의대 의학유전학과 손영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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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진료실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찾아왔다. 천진한 얼굴을 뒤로 마치 임신부처럼 부풀어 있는 배를 끌어안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코피를 자주 흘리고 피곤해하더니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고셔병을 진단받았다.

 고셔병은 리소좀이라는 세포 내 소기관에서 스핑고리피드의 분해를 담당하는 효소인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분해되지 못한 물질이 간·비장 등에 과하게 축적돼 각종 증상을 유발한다. 전 세계 인구 4만~6만 명당 한 명꼴로 발병한다. 국내에는 두 자릿수의 환자가 보고됐다.

 고셔병이 발병하면 빈혈, 혈소판 감소증이 생기며, 간·비장의 크기가 커지면서 배가 불룩하게 나오거나 뼈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 다양한 증상이 발생한다. 개인에 따라 거의 증상이 없는 환자도 있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급격하게 증상이 진행되는 환자도 있다. 환자 수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특징적 증상이 없다 보니 환자뿐 아니라 일반 의료진 사이에서도 생소한 질병이다.

 앞선 사례는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국내에서 고셔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일찍 진단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셔병 환자는 헤모글로빈·혈소판 수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백혈병이나 혈액암 등으로 오인해 치료하기도 한다. 실제로 고셔병 등록사업 보고에 따르면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난 시점부터 고셔병을 확진 받기까지 평균 13년이 걸렸다. 소아 환자에게 고셔병이 발생하면 환자의 약 50%가 성장 장애를 동반한다. 고셔병의 조기진단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다행히 조기진단을 통해 빨리 치료를 시작할수록 정상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과거에는 치료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빠른 치료를 통해 만성질환처럼 관리가 가능하다.

 희귀 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5% 정도에 불과하지만 고셔병 치료제의 발전 속도는 주목을 끈다. 1990년대 후반 개발된 효소 대체요법은 등장 직후 고셔병 치료의 골든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주마다 규칙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정맥주사를 맞아야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경구용 치료제가 등장했다. 새로운 치료 옵션의 등장을 통해 환자와 가족 모두 삶의 수준이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다.

 앞 사례의 아이는 현재 성인이 돼 직장에 다니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치료 방법이 없었던 고셔병이지만 이제는 조기에 진단·치료받으면 정상인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아직까지 진단받지 못한 고셔병 환자를 찾아내고 더 많은 환자가 조기에 진단받는 것이다. 이로써 고셔병 환자도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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