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시」의 사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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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사회당의 「이시바시」(석교정사) 전위원장이 12일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 일본의 한국침략에 사죄하고 바로 파고다공원으로 가서 항일독립기념탑에 참배, 헌화했다.
항상 친한인사라고 자타가 공인해온 일본인들의 오만하고 무례한 모습만 보아온 우리에게는 이런 일본인도 있구나 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이시바시」씨의 행동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공항도착회견에서 『과거 한일간에 침략과 불법·부당한 간섭의 시기가 있었던 점은 유감이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죄했다.
물론 일본 사회당이 과거 일제의 침략을 반성하는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기본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회당의 전위원장(당수)이자 일본정계의 지도급인사인 그가 서울방문의 첫 발걸음에서 육성으로 사죄하고 행동으로 용서를 비는 의식을 보여준 것은 일단 우리의 가슴을 조금은 후련하게 해준 행동거지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또 『저의 방한이 제가 속한 사회당에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였던 한국을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하는데 첫걸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면서 한국의 존재를 부인했던 사회당 정책을 나름대로 해명했다.
한마디로 일본정부의 편향적 대한반도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호의적 언행을 보면서도 찜찜한 것은 왜일까. 그가 공항에서 『사회당은 일제침략에 기인한 남북분단·재일 교포 문제·원폭피해자 문제 등의 해결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동안 사회당이 이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 성의 있게 노력했는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정치의 구조로 봐서 제1야당인 사회당이 강하게 밀었다면 최소한 재일 교포·원폭피폭자 문제 등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았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당이 일제에 당한 한국인의 상흔의 깊이와 폭을 진심으로 이해, 수사가 아니라 행동으로 그 응어리진 한국인의 한을 푸는데 앞장서는 계기가 「이시바시」씨의 첫 방한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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