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감사하는 마음|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 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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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종교적 심성에 젖게 된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들판에서, 그래도 하늘이 주신 수확에 감사드리는 부부의 그 경건한 모습에서 우린 많은걸 느끼게 된다. 가난하지만 감사드릴 수 있는 그 부부는 결코 가난할 수 없다. 누구보다 풍요롭다. 신의 은총이 헐렁한 저녁들판에 넘실거린다.
감사하는 마음은 본인뿐만 아니고 주위사람까지 풍성하게 해준다. 모든 이의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질투도, 미움도, 아픔까지도 감사하는 마음 안에선 모든 게 용해된다.
하찮은 것에도 진심으로 감사히 여겨 보라. 순간의 마음이 그지없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한 구석 나쁜 마음이 깃들일 여지가 없다. 터질 듯한 분노도 가라앉고 끊어질 듯한 긴장도 스르르 풀릴 것이다.
이것이 감사의 생리작용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뿐 아니라 신체의 기능까지 부드럽게 해준다. 쥐었던 주먹도 풀리고 올랐던 혈압도 떨어진다. 신경질로 창백했던 얼굴에 다시 핏기가 돌면서 화기가 감돈다.
거친 호흡, 빠른 맥박이 차츰 진정된다. 모든 신체기능이 평 온과 안정을 회복한다. 어떤 안정제보다 효과적이다.
스트레스 홍수 속, 불안과 긴장으로 떨어야 하는 현대인에겐 감사하는 마음만큼 효과적인 치료제가 달리 없다.
스트레스 의학의 선구자인 셀리 박사도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현대인의 구원이요, 건강의 비결이라고 갈파하고 있다. 피로회 복제요, 치료제요, 활력소라고 강조한 것이다.
작은 일에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인의 생활자세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보잘것없는걸 갖고도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그 자세가 부러운 것이다. 기도를 드리는 종교인의 얼굴엔 그래서 언제나 평화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다.
어디 종교인 만이랴. 잠시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보면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은 게 없다. 밤새 단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밤을 지켜 준 방범대원, 멀리 일선의 국군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우러날 것이다. 문간에 배달된 우유 한 병, 신문 한 장에도 어찌 고마운 마음이 우러나지 않으랴. 새벽길 찬바람을 가르며 달려온 배달소년을 생각하노라면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아침상을 대해도 땀흘린 농민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순간 편안한 마음이 된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는 건 내 마음에 모든 불평불만을 씻어 내버린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했으며 또 잠인들 오죽이나 불편했던가. 골치도 아프고 밥맛도 없고, 생각할수록 불화만 치밀었다.
하지만 이제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였으니 마음도 몸도 그저 편안하기만 할 뿐이다. 언제나 이런 자세로 살도록 노력하자. 작다고 불평 말고 그나마도 있는 것에 감사하고 살자. 그게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내 건강을 지켜 가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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