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역경」딛고 올림픽 2관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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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그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시상대를 내려왔다.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한명의 「물의 철인」이 탄생한 것에 열광하고 있었다.
소아마비를 딛고 세계정상에 오른「그렉·바튼」(27).
그는 불구의 몸으로 카약 1 ,2승 1천m에서 우승,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의 우승이 전세계 장애자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1m74cm·74kg 커누선수로는 좀작은 편인 「바튼」은 첫우승 소감을 『전세계신체장애자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다.
안짱다리로 태어나 여러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못해 왼쪽다리가 오른쪽다리보다 3cm나 짧은 「바튼」은 이때문에 국민학교시절에는 스포츠열등생으로 숨어지내야 했다.
대신 명석한 두뇌로 학과성적은 항상 1등이었으나 그의 소망은 친구들처럼 스포츠를 즐기는 것.
그는 11살때 커누광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고 형「부루스」와 자연스럽게 커누를 타기 시작했다.
커누는 하체의 놀림이 거의 필요없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량은 일취월장, 커누를 탄지 2년후인 73년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형과 함께 미국선수권대회 카약 2인승 1천m에 첫 출전,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본격적인 선수생활로 뛰어들었다. 75년 국가주니어대표로 선발된 「바튼」은 특히 지구력이 뛰어나 1만m경기에서 미국의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 커누선수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림픽종목인 1천m에서 입상권에는 번번이 들지 못했다. 스피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쪽 다리를 원망하며 패들을 놓을까 망설인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형 「부루스」의 설득과 지도로 노젓는 테크닉을 새롭게 개발하면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노를 저은후 뺄때 45도의 각도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반적인 커누기술이나 당시로서는 가위 혁명적이었던 것.
이 기술로 그는 점차 스피드가 붙기 시작했다.
84년 LA올림픽에서 그는 국가대표로 출전해 동메달을 따내는데 성공, 세계적인 장애자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그후 85년 세계선수권 카약 1인승 1만m, 87세계대회 카약 1천·1만m에서 각각 우승, 미국카약의 독보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LA대회이후 각종 국제대회에서 얻은 그의 금메달수는 모두 40여개.
17년 인고의 결실이었으며 결국 신체적 핸디캡은 그의 인생항로에 장애가 되지 못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는 현재 미국 카약대표선수인 「필립스」양과 열애중이다. <방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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