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한명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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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섯살박이 기일이가 흐느끼는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좋아라 날뛰고 있었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하는 그의 흐릿한 동공에는 엉겨붙은 부인과 아들의 모습이 태산처럼 확대되어 왔다.
32세의 아버지선수 한명우(한명우)는 금메달을 거머쥐는 순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금메달을 따냈으니 그동안 못다한 아버지와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벽지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여섯살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이종순(이종순·57)씨와 두 누님의 손길아래서 자라났다.
중학교때까지 철모르는 개구장이로 자라던 명우소년은 사춘기가 되면서 어려운 환경을 비관, 뒷골목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큰 누님의 결혼을 계기로 서울에 온 명우는 71년 남산공전에 입학하면서 낯선 환경을 견뎌내기 위해 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했다.
거친 생활속에 다져진 강인한 헝그리정신과 뒷골목에서 다듬은 타고난 승부근성은 레슬링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돼 각종 고교대회를 석권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레슬링을 시작한지 2년만인 74년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74kg급에서 전국학생대회를 휩쓸어 학생챔피언이 되었다.
또 건국대학교 3년때인 80년 74kg급에서 우승하면서 81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는 한번도 상위권에 들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79·82년 세계선수권대회와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LA올림픽등 굵직한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했지만 번번이 메달문턱에서 분루를 삼켜야했다.
그때마다 선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패배감과 허탈감으로 몇번이나 주저앉았으나 지금의 아내인 황덕심씨(황덕심·33)의 눈물어린 호소에 어금니를 악물고 일어서 결국 86년아시안게임에서 첫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획득 후 선수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대표팀트레이너로 눌러앉았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이 가까워 올수록 한맺힌 l7년 선수생활의 불꽃을 피우고 싶어 트레이너자리를 박차고 다시 선수로 컴백했다.
32세의 노장 한명우는 대표팀의 큰형님으로 어린 선수들의 훈련을 보살피는 한편 뒤지는 체력을 보강하기위해 남모르는 강훈을 거듭,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고 결국 주장을 맡았다.
84년 결혼, 1남1녀를 두고있는 가장으로 태릉선수촌 합숙기간중에도 매일 전화를 걸어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등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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