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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은 백기사 증거 보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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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대중공업 측과 접촉해 '백기사'임을 믿게 할 만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겠다."

전인백(사진) 현대그룹 기획총괄본부장(사장)은 28일 본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몽준 회장의 현대중공업그룹이 27일 형수인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계열 현대상선 지분 26.8%를 전격 매입한 데 대한 반응이다. 현대중공업 측은 "현대상선이 외국 기업에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할 위험이 있어 우호지분을 확보해 도우려고 나선 것(백기사 역할)"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전 사장은 "백기사라면 26.8%나 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그룹은 우호 지분까지 약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현대중공업이 10% 정도만 지분을 확보하면 충분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진의가 경영권을 가져가려는 것인지, 백기사 역할을 하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백기사임을 보여 줄 조치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요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대주주로서 정관에 이른바 '황금낙하산' 제도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를 넣어 달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좀 더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황금낙하산이란 현 경영진을 내보내려면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해 주주가 함부로 경영진을 바꾸지 못하도록 한 장치다.

전 사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문제에 대해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으로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고 했다.

한편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며 즉각적인 반응을 피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은 KCC와 다르다. 삼촌하고 형제는 좀 다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의 시숙인 정상명 명예회장의 KCC는 2년 전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집해 그룹 경영권을 위협한 적이 있다.

증시에선 현대중공업의 '백기사론'에 의문을 던지는 분위기도 있다. 삼성증권 구혜진 애널리스트는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 규모가 현대그룹과 별 차이가 없어 중공업 측이 상선을 적대적 인수합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권혁주.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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