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으로 기우는 정부] 美 2사단 차출땐 안보공백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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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파병 요청 규모나 경로를 하나씩 풀어놓을 뿐 파병 여부에 대해선 "결정된 것이 없다""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전 준비작업 없이 급작스럽게 짐을 떠안게 된 데 대한 정부의 고민도 묻어난다.

그러나 관련 부처는 파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분위기다. 한.미동맹 관계와 북핵 문제 주무부서인 국방부와 외교부가 특히 그렇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안보에 구멍이 생기고, 한.미동맹 조정 문제도 꼬일 수 있다는 우려다.

두 부서 내에선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차제에 탈냉전이라는 새 국제환경에 발맞춰 적극적으로 국제적 공헌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함께 나돈다.

실제 정부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내지 않으면 미국이 미 2사단 병력 일부를 빼 이라크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 육군은 10개의 정규 사단 중 주한 2사단 등 2~3개 사단을 제외한 대부분을 이라크전과 아프카니스탄전에 투입했거나 6개의 스트라이커 여단을 구성하는 데 동원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추가 파병할 경우 2사단 병력을 차출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1965년 월남전에 한국군 파병을 요청하면서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를 거론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청와대는 보다 신중하다. 파병 문제가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까지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정부는 일단 이라크 치안 유지 외국군 부대를 유엔 다국적군으로 하는 유엔 결의안 통과 여부가 파병의 최대 관문으로 보고 있다. 이 결의안이 통과되면 파병의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군 중심의 연합군이 아닌 유엔군에 병력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결의는 국군 파병의 중요 변수"라며 "결의가 있는 것이 여러가지로 (파병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5일 유엔 결의안이 파병 결정에 중요한 고려 변수인지를 묻는 질문에 "결의안도 하나의 고려 요소는 되나 전부는 아니다. 여러 복합적인 국내외적 정세 분석, 한반도 평화 유지 등을 감안해 총체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만의 하나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파병을 고려할 것임을 내비친 말이다.

정부는 또 이라크 내 치안 상태도 변수의 하나라는 입장이다. 미국이 사실상 전투병을 요청한 만큼 인명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파병 결정에 앞서 이라크에 관계부처 합동조사단을 파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것은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파병 결정 문제는 이르면 이번 주에 이뤄질 이라크 재건 문제와 관련한 유엔 결의, 다음주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방문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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