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 맞는 경제, 위기의식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우려하던 경상수지 적자 행진이 눈앞에 현실화되고 있다. 1분기 경상수지 적자가 10억 달러를 넘었다. 환율 하락과 고유가 후유증이 드디어 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배당금 지급 증가 등 계절적 요인이 많이 작용했다는 한국은행의 설명을 감안해도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경상수지 160억 달러 흑자 전망은커녕 최악의 경우 올해 경상수지 전체가 아예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쯤이면 비상이 걸려야 정상이다. 미국의 경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략유 비축을 잠정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미국인들이 늘면서 전철과 버스 이용객은 사상 최고를 기록 중이다. 일본도 오랫동안 추진해온 에너지 정책이 결실을 보고 있다. 가솔린 엔진과 전기 엔진을 함께 장착한 하이브리드 차량 보급이 확대되면서 일본은 21년 만에 휘발유 판매가 처음으로 감소했다.

부시 대통령이 긴급 대책을 발표하던 날, 한국에선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우리 경제의 안정 성장을 자신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원칙과 정도에 입각해 경제를 운영해온 만큼 양철 냄비에서 쇠솥 경기로 체질이 바뀌었다"고 선언했다. 끄떡없으니 걱정 말라는 말이다. 세계 1, 2위 경제대국의 호들갑을 한순간에 무색하게 만드는 대단한 기백이다.

참고로 지난 3년간 원화 절상률은 경쟁국인 일본.대만의 2~4배에 달했다.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일본의 3배다. 우리 수출상품의 달러 결제 비율은 82%로 일본(52%)보다 훨씬 높다. 또 한국은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환율 하락과 고유가에 따른 부담은 당연히 한국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과연 끄떡없을까.

세계가 온통 경제를 걱정하는데 청와대만 낙관론을 펴고 있다. 세계 경제 흐름과 상식에서 너무 벗어난 그런 주장을 누가 선뜻 믿겠는가. 국민은 걱정하고 있다.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위기의식을 주문한다. 지금 경제가 괜찮다면, 도대체 경제위기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