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대한문…쌍용차노조·친박단체 대립에 국회의원 폭행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이고…아이고…”
“시체팔이는 물러가라!”
“여기(대한문)는 태극기의 성지다!”

사망한 조합원 분향소 세운 쌍용차 노조에 #“대한문은 보수 성지”라며 반대 시위 #“기생충” “시체팔이” 언급도

4일 오후 2시 서울 대한문 앞은 곡소리와 고함이 한 데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이곳에 분향소를 설치하면서다. 금속노조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와 관련된 30번째 사망자인 김주중 조합원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3일 오전 11시 대한문 앞에 설치했다. 이에 대한문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 등을 이어온 태극기행동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가 반발하고 나서며 충돌이 시작됐다.

4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 해고된 쌍용차 사망 조합원의 분향소가 차려진 가운데,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광화문으로 가라"며 항의하자 경찰이 양측을 갈라놓은 모습이다. [홍지유 기자]

4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 해고된 쌍용차 사망 조합원의 분향소가 차려진 가운데,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광화문으로 가라"며 항의하자 경찰이 양측을 갈라놓은 모습이다. [홍지유 기자]

4일 오후 2시 국본 관계자 50여 명은 분향소를 둘러싸고 “물러가라” “광화문으로 가라”며 소리치고, 고의로 곡소리를 내며 추모사 낭독을 방해했다. 일부는 추모하는 조합원들을 “시체팔이” “기생충” 등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른 오전 시작된 대치는 경찰이 3개 중대의 경력을 배치해 양측을 갈라놓으며 잠시 소강됐지만 오후 1시 노조 측이 추모제를 시작하며 다시 충돌이 일었다. 분향소 천막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소리치는 한 조합원을 상대로 국본 관계자가 달려들어 경찰이 막아서 등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대한문을 방문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남대문경찰서는 오후 5시쯤 표 의원의 목덜미를 잡아서 폭행한 국본 관계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한편 양측의 가장 극심하게 대립했던 오후 2시쯤 분향소에서 1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대한문 정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돼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렸다. 일부는 교대식 관람을 멈추고 아수라장이 된 분향소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일부 시민은 분향소 물품과 국본의 천막으로 어지럽혀진 인도를 피해 차도를 따라 걸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김주현(29)씨는 “어느 단체가 집회를 하든 상관없지만 고함을 치며 통행에 불편을 주는 모습은 불쾌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분향소를 둘러싸고 국본 관계자들과 조합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에 대비했다 [홍지유 기자]

경찰은 분향소를 둘러싸고 국본 관계자들과 조합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에 대비했다 [홍지유 기자]

국본 측의 주장은 금속노조보다 먼저 대한문 앞 집회를 신고했으며, 금속노조의 분향소 설치는 불법 점거라는 것이다. 대한문 앞에서 만난 한 국본 관계자는 “다른 장소도 있는데 굳이 충돌이 예상되는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미 우리가 집회 신고를 낸 대한문 대신 광화문이나 서울광장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두 단체가 동시에 집회를 열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본 측은 대한문 앞 집회 신고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쌍용차 노조보다 먼저 신고한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뒷순위로 신고했다고 해서 같은 장소에서 집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오후 1시부터 약 한 달 간 같은 장소에 집회 신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분향소에서 추모발언을 이어나가는 조합원들과 이를 지켜보는 국본 회원들의 모습. [홍지유 기자]

분향소에서 추모발언을 이어나가는 조합원들과 이를 지켜보는 국본 회원들의 모습. [홍지유 기자]

오후 2시쯤 경찰과 노조 측이 분향소를 덕수궁 담벼락 방향으로 약 5m 이동하기로 결정하면서 실랑이가 점차 잦아들었다. 쌍용차 노조 관계자는 “아직 분향소 운영 종료 시점에 대한 계획은 없다”며 “시민들이 고인에 대한 추모를 충분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분향소를 열어둘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