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칸쿤 결렬, 개방압력 더 거세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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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농업의 생사가 걸렸던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합의에 실패해 선언문 채택 없이 막을 내렸다. 회의기간 내내 격렬한 반대시위를 벌여온 국내 농민단체들은 1999년 시애틀 회의에 연이은 결렬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농업개방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엄혹한 대세임을 재확인시켰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번 협상이 순연됐다고 협상메커니즘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선진국과 농산물 수출국의 지지를 담은 농업부문의 협상초안은 개도국마저 대폭적인 관세를 감축하자는 것이어서 점진적 관세인하와 저율관세 의무수입량 조항을 빼자는 한국의 주장은 애초부터 먹혀들 여지가 없었다.

앞으로 쌀협상도 이번 결렬로 먹구름이 낄 우려가 커졌다. 민감한 일부 품목에 대해 관세상한 방식을 적용하지 말자는 제안이 나왔다.그러나 확정된 바가 아니어서 쌀을 특별품목에 포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우리측은 여전히 개도국 지위의 고수에 목매고 있으나 회의장의 대세는 개도국 지위부여에 더 엄격한 조건을 달자는 쪽이었다. 그렇다고 자유무역협정(FTA) 하나도 변변히 맺지 못한 우리가 다자간 협상을 버리고 양자협상에 나선다는 것은 더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는 것이다.

칸쿤회의의 결렬로 오는 2006년 새 라운드로 이행하려던 일정은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번 회의 결과는 농업개방에 관한 한 우루과이라운드 때보다 우군이 줄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그만큼 세계농업전쟁은 치열하고 획기적 구조조정 없이는 우리 농업이 살아남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정부가 늦었지만 실효성있는 농업살리기와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최선을 다해 후속협상에서 하나라도 더 건져야 한다. 개방은 대외협상에 못지않게 국내설득이 더 어렵다.

개방이 불가피해도 안으로 갈등을 키우느냐, 아니면 통합해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개방파고는 농민들에게만 지울 멍에는 아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지혜를 모으는 국민적 대처가 더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