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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신비…조선왕가의 제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조선시대에 왕이 조상들께 올리던 「종묘제례」가 해방이후 처음으로 한밤중에 재현되어 때마침 서울로 집중된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한국전통문화를 생생히 아로새겼다.
음력 팔월 초여드레 저녁 8시부터 2시간 남짓 계속된 종묘제례의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황등으로 은은하고도 따스하게 불 밝힌 종묘에 몰려든 내·외국인들은 정한모 문공부장관, 터키 대사부부를 비롯한 주한 외교사절 등 약 3천여명이나 됐다.
평경·편종·방향·축·어·절고 등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국악기까지 동원해서 『종묘제례악』전곡을 연주한 국립국악원·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대악회 등의 연주단 3백여명과 일무를 맡은 국악고교생 64명 외에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제관 1백66명 등 세종 이후 최대인원이 각각 자리잡은 종묘 정전앞뜰은 여느 옥외공연 때와 달리 시종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였다.
특히 광평대군 17대손 이범준, 교통부장관이 면류관을 쓰고 나와 전국 각 시·도에서 선발된 제관들과 함께 왕의 친행제례 모습을 보여주어 더욱 이채.
49위의 신위가 봉안된 정전의 19실 가운데 태조 고황제와 두 황후의 신위를 모신 제1실의 초헌관으로서 잔을 올리고 소차막에 대기했다가 축폐를 불사르는 망료까지 모두 마치는 왕의 모습은 장엄하고도 신비로운 종묘제례의 분위기를 한층 북돋웠다.
제례순서를 알리는 무형문화재 56호 기능보유자 이은표씨의 창홀에 따라 제모·예복·각대·패수·홀 등을 갖춘 제관들이 영신·전폐(신을 모시기 위해 향과 술을 올리고 신이 내리면 모시(폐)를 올리는 절차)·진찬(젯상에 제물을 진설하는 절차)·초헌·아헌·종헌·음복·철변두(제기를 거두는 절차)·송신·망료(제례에 쓰인 축문과 모시를 불태우는 절차) 등이 진행되는 동안 제실 안에서 벌어지는 제례장면들은 정전앞뜰에 설치된 대형 멀티비전에 비쳐져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종묘제례악』은 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제정됐다. 조상의 문덕을 기린 『보태평』과 무공을 기린 『정대업』등 한국음계의 고유한 특성을 간직한 『종묘제례악』에 맞춰 국악고교생들이 일무를 추였다. 『보태평』과 함께 문무를 출 때는 왼손에 약, 오른손에 적을 들고, 『정대업』에 맞춰 무무를 출 때는 목검과 목창을 들었는데 관람자들은 저것들이 뭐냐고 서로 물으며 신기한 듯이 수군수군.
또 일반 가정의 제사와는 여러모로 크게 달라 어떤 순서가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조선시대 왕가의 제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히 알만하다』는 반응들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2시간이 넘는 이 제례행사를 끝까지 매우 흥미롭고도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본 「유누스·규첼」주한 터키대사부부는 『조용하면서도 유연하게이어지는 음악과 컬러풀한 의상 등이 매우 인상적』이라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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