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국악계의 보아 꽃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사진=김성룡 기자]

청바지에 면티 차림. 딱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손에 든 해금이 없었더라면 그가 신세대 해금 연주자 꽃별(26.본명 이꽃별)이란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는 '국악계의 보아'라 불리기도 한다. 국악 전공자임에도 일본으로 건너가 2003년 첫 음반을 냈기 때문이다.

일본 열도를 구석구석 밟으며 활동한 지 4년째. 3집 'Fly Fly Fly'까지 낸 지금에 와서야 고국인 한국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연다. 다음달 24일 서울 LG아트센터(02-2005-0114) 공연을 앞둔 그를 만났다.

"좀 떨려요. 객석이 텅 비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고요."

그의 앨범은 늘 한.일 양국에서 발매됐다. 그러나 주로 일본에서 활동했기에 첫 한국 공연을 앞둔 지금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한다.

"일본 사람들도 처음엔 해금이 뭔지, 제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해금이 아니라 중국 악기 '얼후'인 줄 아는 분도 많았죠."

꽃별이 일본 음반사 관계자의 눈에 띈 건 한국예술종합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2년. 소리꾼 김용우 밴드의 세션으로 일본에서 첫 공연을 할 때였다. 청바지를 입고 한쪽 발을 모니터에 턱 올려놓은 채 열정적으로 해금을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은 튈 수밖에 없었다.

"열정적인 곡이었어요. 혼자 연습할 때도 연주를 끝내고 나면 숨이 차 헉헉거릴 정도였죠. 그런 곡을 어떻게 얌전히 앉아서 연주할 수 있겠어요?"

그녀를 점찍은 일본 측 관계자는 뉴에이지 음악에 꽃별의 해금 소리를 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꽃별은 망설였다. 충실하게 전통 음악을 연구해도 모자랄 판에 옆길로 새는 게 과연 옳은 길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장고 끝에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했다. 피아니스트 사사키 이사오, 작곡가 마사쓰구 시노자키 등 걸출한 뮤지션의 손을 거쳐 2003년 첫 앨범 'small flowers'를 냈다. 몇몇 곡은 이미 국내에서도 광고 음악으로 쓰여 익숙하다.

일본 활동은 쉽지 않았다. 외로움도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훌쩍 클 수 있었다.

"늘 저보다 뛰어난 분들과 연주했어요. 잘못하면 혼나기도 해요. 처음엔 눈물 나고 자존심도 상했죠. 그런데 어디 가서 그런 선생님들을 만나겠어요. 제가 복이 많은 사람이죠."

그는 "사실 김용우 밴드의 멤버로 무대에 서기에도 (실력이) 모자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독하게 마음먹고 밤새 연습해 임무를 완수했다. 일본에서도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 마찬가지였다. 능력 밖의 일까지 해내도록 요구받았다. 먹고 잘 시간도 아쉬울 정도로 벅찬 일정이었다. 그러나 주어진 일은 다 해냈다.

"일본에 갈 때 결심한 게 있어요. '못한다'는 말은 죽어도 하지 말자…."

처음엔 일본 거장들의 실력을 배경 삼아 해금 연주만 하던 그였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비중을 늘렸다. 3집에서는 선곡.작곡.편곡.믹싱.마스터링 등 앨범 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군밤타령' 가락을 응용한 'Korean Bitter', 동요 '섬집아기', 보사노바풍으로 편곡한 고(故) 유재하의 '지난날', 블루스로 편곡한 상주 아리랑 등을 담았다. 그래서 이제는 "만약 제가 (일본 진출을) 거절했을 때 일본 측에서도 포기했다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라고 되물을 정도가 됐다.

그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 복학했다.

"전통은 항상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그러면 뿌리 없는 나무가 되니까요."

자신의 앨범에 담긴 곡은 연습을 못할지언정 산조와 정악은 매일 연습한다. 처음엔 활동을 더 할 욕심에 대학원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공부하길 잘했다"고 말한다. 오만이나 독선에 빠지지 않고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다. 재즈 피아노 개인 강습도 받고 있다. 퓨전 음악을 하려면 재즈 공부는 필수란다.

"음악을 안 했으면 사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터질 듯한 매 순간을 모르고 살았을 것 같아요."

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