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한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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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들이 1백47.5kg의 바벨을 힘겹게 들어올리는 순간 『와』함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선 전선수의 아버지 전덕권씨(46)와 어머니 박옥수씨(45)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두 손을 합장한 어머니 박씨는 『이제야 병관이가 한을 풀었다』며 『집념이 유달리 강해 이번 올림픽에 꼭 무언가 해낼 줄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서 20여마지기의 농사를 짓고 있는 전선수 부모는 구릿빛 얼굴·거친 손의 전형적인 「한국농군」.
『조석으로 정안수 떠놓고 부처님께 기도했다』는 어머니 박씨는 『시합전날 어느 노인이 나타나 박수를 치니 갑자기 병관이가 환하게 웃는 꿈을 꾸어 좋은 소식을 기대했었다』고 한다.
『명랑하고 쾌활하면서도 집념이 강해 중학교 때까지 늘 학교성적이 수위였던 병관이가 중학 1학년 때 공부는 않고 역도를 하겠다고 고집 피울 때는 무척 고민을 했으나 중3때 국가대표선수가 되자 집안식구 모두가 적극 뒷바라지했다』는 아버지 전씨는『아시안게임서 실패한 이후에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체중 조절을 하는 것을 보고는 무척 안쓰러웠다』고 했다.
선수촌에 있으면서도 1주일에 꼭 세 번씩 시골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가 끓여 주는 두부찌개를 실컷 먹고 싶다』고 응석을 피우던 아들이 한국의 명예를 번쩍 들어올린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전군 부모는 아들의 시합 모습이 방영되는 TV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작은 거인」전병관의 장한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고향마을 강정부락 주민 1백여명도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잔치마당을 벌였다.
강정부락은 세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전군 17대조 전극례 할아버지가 낙향해 일군 천안 전씨 집성촌.
『아시안게임 때 탈락한 아들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던 어머니의 낙담한 모습에 주민 모두가 가슴 아파했었다』는 이장 송병관씨(40)는 『아들이 좋은 결실을 맺게 해달라고 매일 새벽 원불교 교당에 나가 백일 기도한 어머니 박씨의 정성이 병관이에게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기뻐했다.
역도사상 32년만의 쾌거를 부락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주민들은 전선수의 집 마당에 모여 풍물놀이와 전선수 어릴 때 얘기로 밤을 밝혔다. @@모보일|전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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