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일본 古書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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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일본의 한 대학이 책 한권을 놓고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도서관에서 도난당한 16세기의 해부학 책을 일본의 한 사립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옥스퍼드대가 반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는 소유자가 어떤 대학인지 모른 채 문제의 책을 일본의 사립대에 넘긴 고서점을 통해 반환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대학 측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샀으므로 법적 하자가 전혀 없다"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문제의 서적은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가 1552년에 쓴 '인체 구조에 대하여'의 두 권짜리 휴대판으로 전세계에 10여권밖에 없는 귀중본이다.

미국의 고서점이 경매에서 7천파운드(약 1천3백만원)에 사들여 95년 여름 도쿄(東京)의 한 고서점을 통해 현 소유주에게 넘겼다.

옥스퍼드대 일본 사무소에 따르면 이 책은 92~95년에 도난당해 전세계에 팔려나간 고서 74점 중 옥스퍼드가 되찾지 못한 유일한 것이다. 옥스퍼드대 측은 각국에서 책을 찾아 95년 체포된 범인에게서 압수한 매각대금으로 재구매해 왔다.

일본 전문가들은 "장물임을 모르고 구입한 물품의 경우 원래 소유주는 도난당한 지 2년 이내에만 반환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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