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주인 기다리는 판문점 나무상자 200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ㆍ25 전쟁 때 사망한 뒤 북한 지역에 묻혀있는 미군의 유해 송환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미군 유해 송환에 합의했다. 이후 양측은 유해 송환을 위해 실무준비를 진행해 왔다. 특히 유엔군사령부는 지난 23일 북한에서 넘겨받은 유해를 임시로 운반할 나무 상자 100여개를 판문점에 보냈다. 미군 관계자는 이날 “유해를 인수하면 오산 공군기지에서 분류한 뒤 유해 운반용 금속케이스에 담아 수송기를 이용해 미국(하와이)으로 옮길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소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0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0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계획은 지난주 미국 유해 담당자가 방북해 협상을 진행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 이미 오늘(현지시간 20일) 200구의 유해가 송환됐다(have been sent back)”고 밝힌 뒤에 공개됐다. 따라서 늦어도 이번 주에는 유해 송환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진전이 없다. 미군 관계자는 “지난주 말과 상황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군이 준비한 나무상자도 29일 오전 현재 판문점에 그대로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나무 상자의 숫자가 당초 미군측이 밝혔던 것(100여개)보다 늘어나 200여개가 준비됐다고 한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진행한 실무협의가 여의치 않자, 미군 유해 송환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유해 송환은 6ㆍ12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의 첫 이행이라는 점에서 그가 현장에서 유해 인수를 챙길 가능성이 크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과정과 내용 등을 담은 이행합의서 체결 등 북미 협상을 주관하고 있다.

그가 방북한다는 건 뭔가 실무협의에서 가닥이 잡혔고,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절차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미국이 지난주 국무부와 중앙정보국 실무진 4명, 유해 담당자 2명 등 6명을 평양에 파견해 진행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문제 협의가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북ㆍ미간에 (비핵화 문제로)밀고 당기기를 하며 시간이 늦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국자의 설명대로라면 양측이 실무협의 단계에서 막판 진통을 겪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지연됐고 유해송환 연기로 이어진 것이 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인도적 차원의 유해 송환을 정치적 문제와 결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다음 주 방북할 것이란 전망이 미 국무부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실무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었다는 얘기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도 국무부 관리를 인용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계획을 보도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이뤄진다면 동시에 미군 유해 송환도 진행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상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