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영화 보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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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자인 김동준(25)씨는 7월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영화 '왕의 남자'가 DVD로 출시되기 때문이다. 들을 수 없는 김씨는 극장에선 한국 영화를 볼 수 없다. 배우들의 입 모양과 몸집만으로는 내용을 파악하는 게 힘들어서다. 김씨는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DVD가 출시돼야 국산 영화를 볼 수 있다"며 "자막 없는 극장에선 청각 장애인과 외국인은 똑같은 처지 "라고 밝혔다.

장애인들이 영화.TV.통신 등 각종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돼 '문화 격차(culture divide)'의 그늘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불편한 몸 때문에 자막 없이는 영화나 TV를 볼 수 없는 등 기본적인 문화 생활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영화.TV 격차=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극장의 스크린은 모두 1634개. 이 가운데 청각 장애자를 위한 자막 영화가 상영되는 곳은 현재 한 군데도 없다. 청각 장애자인 김모(33)씨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 특별 영화제에 참석하거나, 한글 자막을 입힌 DVD가 출시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한국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2004년 10월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 등이 국산 영화에 자막 삽입을 의무화하는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중이다. 일부 영화인들은 "비장애인의 관람에 지장을 준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농아인협회는 미국에서 활용중인'폐쇄 자막 시스템' 도입을 문화관광부에 최근 건의한 상태다. 이 시스템은 특수 안경을 통해 개별적으로 자막이 나와 비장애인의 관람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TV에서도 장애인의 문화 격차는 심각하다. 올해로 시행 7년째를 맞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폐쇄자막방송의 경우 방송 4사 평균 40%대에 그치고 있다. 수화 통역 방송은 주간 누적을 기준으로 평균 61분에 불과하다. 특히 EBS 위성채널의 경우 자막방송과 수화통역이 전혀 없어 '교육권 침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80 ̄100% 자막 방송을 편성하고, TV에 자막수신을 할 수 있는 전자칩을 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한국농아인협회 김철환 기획부장은 "문화를 즐기는 감성에는 장애가 없다"며"장애인들에게 문화 접근의 턱을 낮춰달라"고 말했다.

◇IT.통신 격차도 심각=정통부가 지난해 9월 정부기관 홈페이지 77곳을 대상으로 '웹 접근성(장애유무와 상관없이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정도)'을 평가한 결과 평균 72점에 그쳤다. 80점 이하일 경우 시각장애인 등의 인터넷 이용이 어렵다는 뜻이다. 청각 장애인의 경우 최근'통신중계서비스센터'의 문자 중계를 통해 전화 통화까지 가능해졌으나 예산이 부족해 이용 인원(일평균 200 ̄300건)에 제한이 따르는 실정이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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